▲쉐어하우스 내부 1층 전경
정승훈
하지만 다행히 우리집에는 개인 방을 들어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거쳐 가야만 하는 공간이 있다. 드물었지만 가끔씩 퇴근 후에 맥주 한 캔씩 들고 와서 함께 일상을 나누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개인의 어려움과 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털어놓는 자리를 가지면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매력과 만날 수 있었고 우리의 관계는 진전되기 시작했다.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퇴근하는 길에 함께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장을 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집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점점 진정한 의미의 식구(食口)가 되어가고 있었다.
기상청에서 연일 수도권에 호우주의보를 내리던, 장마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여름 어느 날이었다. SNS 단체방에 다급함이 섞인 메시지가 올라왔다.
"망해써, 우리 2층 벽에 물새요, 그것도 콘센트 방향으로…"토요일 저녁이라 지인들과 만나고 있던 집 식구들은 '누군가 해결해주겠지'라는 마음보다는 '큰일 났어요, 우리 집에 물샌대요' 라는 말을 전하며 집으로 속속 모여 들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시공을 담당했었던 적정기술 대표님과 통화해서 자문을 구했고, 집 식구들과 민달팽이 주택 협동조합 사무국 사람들이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2층과 연결된 두꺼비집(누전차단기)을 내려 누전 발생을 대비했고 누수 발생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동영상을 촬영해 시공 담당자분께 보내드렸다.
고시원이나 원룸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당장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따졌을 게 뻔하다. 하지만, 조합원으로서 함께 이 집에 살아간다는 소속감은 나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해결의 주체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끝내고 나서, 좀 전의 다급함을 달래며 아무렇지 않은 듯 김치전과 함께 막걸리를 나누었다. 요즘도 긴박했던 그 날, '통곡의 달팽이집'이라 지칭하는 날은 술자리 주제로 빠지지 않는다.
다양한 이슈들이 흘러 지나가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도 식구들은 여전히 바쁘고 얼굴은 보기 힘들다. SNS 단체 채팅방에 찍힌 숫자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집이나 집식구와 관련된 특정이슈가 발생하면 내 일처럼 앞 다퉈 깊이 있게 공감하고 또 함께 고민한다.
돌이켜보면 다양한 장면 속에서 식구들 한 명 한 명의 색깔은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서로 달랐기 때문에, 그리고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식구였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았고 직장에서의 직위나 직책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사회에 진출하며 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식구들과 생활하며 내 안에 미숙한 점들을 깨달았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 마음의 근육들을 더 단단히 길러낼 수 있었다.
공동체생활, 쉽지만은 않지만 해볼만한 것 공유주거, 물론 쉽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혼자 사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 드라마로비치는 것은 드라마일 뿐이다. 공유주거에서 오는 환상과 설레임은 3일이면 충분하다. 나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도, 함께 살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혼자 사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힘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불이 꺼져있는 방으로 털레털레 들어와 혼자 외로움을 달래지 않아도 된다. 퇴근하면 반겨주는 사람이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술 한잔 하며 기댈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
함께 살아갈 공간을 고민하고 시간과 추억을 나누며, 집과 관련된 대소사를 결정하며 자연스럽게 신뢰를 만들어간다. 작아만 보였던 서로에 대한 신뢰의 연결고리는 확장성을 띄며 주변 지역사회로, 또 다른 달팽이집으로 넓어지며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힘으로 만들어낸 분위기는 누군가가 나가고 또다시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오더라도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안정감 있는 주거환경과 튼튼한 지지기반 속에서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개인들이 많아져 우리 사회가 더욱더 건강해질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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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주택 협동조합원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인사 직 종사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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