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 입은 흑인'이라는 말에 누군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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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긴 OO파출소 OO입니다. 선생님 전화번호가 있어서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운동복 입은 흑인과 어떤 사이세요?""네? 흑인요?""네, 이분에 대해 아세요?"
'운동복 입은 흑인'이라는 말에 누군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알코올 중독인 잠비아 출신 이주 남성이었다. 퇴근 무렵에 만났을 때, 그는 입 안 가득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취기가 있어 보이진 않았고, 술에 절어 있어서 그렇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쉼터에서 술 마시면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 하니까 마시지 말라'며 다짐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 주에 캐나다에 간다. 한국 떠나기로 했다. 장모가 지역 경찰들을 시켜서 나를 감시하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이어 캐나다에 가면 연락하겠다면서 명함을 요구했다. 마침 명함이 없던 내가 연락처를 적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그가 건넨 휴대전화는 방전돼 있었다. 그러자 그는 옆에 있던 종이상자를 뜯더니 쑥 내밀었다.
파출소에서는 그를 조사하려고 해도 신분증이나 휴대전화가 없어서 난감했는데, 마침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종이상자 한 쪽을 찢은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무작정 전화한 것이다. 밤 9시 넘은 시간이었다. 경찰은 '술 취한 흑인을 조사하고 있는데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로 물어도 답변하지 않는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쉼터에서 걸어가기에는 한참 걸리는 거리인데 어떻게 그가 그 파출소까지 갔는지 의아했다.
'술 취한 사람을 데려와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는 차에, 관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내가 데리러 간다고 해서 술 취한 사람을 어를 방법이 없었지만,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갔다. 그런데 방금 파출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정확히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이 말한 주소는 쉼터가 아니었다.
자칭 '홈리스'요,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숙소를 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쉼터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는 몸을 이끌고 흔들흔들 쉼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무슨 일로 파출소에 갔는지 물었다. 그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파출소에 갔다고 했다. "아이들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모른다고 했다. 화가 났다"고 말하던 그의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흘렀다. 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현재 집을 떠나 가족과 헤어진 상태다.
아이들이 보고싶다던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