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창작과비평사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를 쓴 시골 아재는 박형진 님입니다. 사회에서는 이녁을 가리켜 '농부 시인'이라고도 일컫는데, 이녁이 남달리 뛰어나기에 시를 쓰는 흙일꾼이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흙을 만지고 곁님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시골살림을 가꾸다 보니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올 뿐이에요.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시골이웃이 줄고 시골사람이 사라지며 시골노래가 옅어지기 때문에, 박형진 님이 조용히 나서서 시골노래를 부르려 하는구나 싶어요.
박형진 님은 그동안 여러모로 재미난 글을 갈무리해서 책을 여러 권 내놓았습니다. <호박국에 밥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내일을여는책,1996)이나 <다시 들판에 서서>(당그래,2001)나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디새집,2003)이나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소나무,2005)이나 <갯마을 하진이>(보리,2011)나 <콩밭에서>(보리,2011)나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열화당,2015) 같은 책을 선보였어요.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 추녀 물을 세어본다 / 한 방울 / 또 한 방울 / 천원짜리 한 장 없이 /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입춘 단상)아침에 내가 집을 나설 때 / 너희는 버릇처럼 아빠 / 맛있는 것 좀 사다 달라고 했지 / 맛있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 아빠는 오늘 / 자지 않고 기다릴 너희를 위해 / 천원짜리 한 장을 아꼈다가 / 호빵을 샀다 (호빵을 사면서)시골 아재는 시골 아재스럽게 시골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노동은 이제 돈이 되지 못한다" 하고 슬픔 섞인 노래를 부르고, "자지 않고 기다릴 너희를 위해 천 원짜리 한 장을 아꼈다가 호빵을 샀다" 하고 기쁨 감도는 노래를 부릅니다.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를 읽으면 '천 원짜리'라는 말마디가 유난히 자주 나옵니다. 이 시골노래를 부르던 무렵이나 요즈음이나 그리 안 달라졌는데, 시골에서 시골지기가 땅을 일구어 얻은 남새나 푸성귀는 값이 거의 그대로예요. 스무 해 앞서나 요즈음이나 무 한 뿌리나 배추 한 포기 값은 엇비슷합니다. 쌀값도 그렇지요. 지난 스무 해 동안 찻삯이라든지 우표값이라든지 이런저런 물건값은 몇 곱으로 올랐어요. 그렇지만 '시골지기 일삯'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이러하다 보니 시골 아재는 자꾸 '천 원짜리' 하나를 아끼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노래를 부를밖에 없구나 싶어요. 뙤약볕에 흘리는 땀이 천 원짜리 한 장이 못 되는 살림을 노래합니다. 그래도 이 천 원짜리 한 장을 아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맛난 것을 장만하려는 마음을 노래해요.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 나는 /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사랑)밭둑 가에 난 / 한 포가리 녹두 / 무심코 따 / 씹어보니 달싹하다 // 딸아, / 먹어보렴 / 칭얼대지 말고 / 시장한 배엔 / 녹두 꼬투리도 맛있구나 (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