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 년 전 한 사진가가 3년간 그의 작업장을 찍었다. 그때 전시장에 걸렸던 한현수 씨의 모습
이재은
추석연휴가 길었고, 서로의 일정이 바빠 주중에 만나지 못하고 일요일(18일) 오전 화수부두를 찾았다. 그림 그리는 고제민 작가와 함께였다. 몇 년 전부터 화수부두를 스케치하고 화폭에 담고 있다는 작가는 한현수씨의 작업장을 궁금해했다. 나와 함께 그의 삶을 듣고 싶어했다.
닻 만드는 장인은 쉼 없이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며 오래된 사진을 보여주고, 쇠를 달굴 때 쓰는 석탄을 가리키고, 낡은 신발을 벗어주고, 굳은살 박인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질문과 요청에 불편한 기색 없이 응답해주었다. 인터뷰 하겠다고 쉬어야 할 일요일에 손님이 찾아오면 귀찮지 않을까.
"그동안은 1년에 딱 세 번 쉬었어요. 추석, 신정, 구정, 이렇게 딱 세 번. 지금은 그렇게 안 해요. 동네지킴이 동구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바빠졌어요. 등산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죠. 얼마 전에도 닻 만드는 일이 생소하다고 찾아와서 방송에서 찍어갔어요. 끝마무리로 노래 한 곡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가사를 욀 수가 있나. 가끔 부르던 '용두산 엘레지' 맛보기로 조금 부를게요, 하고 불렀죠. 며칠 있다가 전화들이 오는 거야. 아니, 사장님 언제 인터뷰하고 노래까지 부르고 그랬냐고. 일하다가 들었대요. 그러면 반갑고, 기분이 좋죠. 소신껏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대답하면 되니까 귀찮은 건 없어요."내 기준에서만 생각했다. "귀찮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일요일 오전의 인터뷰를 피곤하게 여겼던 속 좁은 내 마음의 반영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어린 시절, 사글세를 전전했던 결혼 생활, 빠져나갈 구멍 없이 막막했던 사업실패 등과 관련된 상투적인 회고(?)에 잠깐 방심한 사이, 그는 나쁜 친구도 좋은 친구라는 말로 내 머리를 두드린다. 빤한 일반론을 뒤집는다. "예전에 어른들이 행실 나쁜 친구들과 못 놀게 한단 말이에요.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 사람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깡패들이요? 못된 놈 보고 깡패라고 하잖아요. 깡패들은 의리가 있어요. 의리가 있어서 걔네들은 가끔 도와줘요. 근데 좋은 친구들이요? 없어요. 극소수예요. 그래서 좋은 친구도 많아야 되지만 나쁜 친구도 많아야 된다, 이걸 또 아셔야 해요."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한 번에 다 하면 안 돼. 또 와야지." 아쉬워하신다.
"지역에 왔으면 그 지역 특산물을 맛 봐야 돼요. 옆에 가서 꽃게탕 들고 가세요. 이렇게 사는 거예요. 대화도 나누고, 좋은 데 가서 차도 맛있게 먹고, 경우에 따라서 탁발도 한 잔 하고…. 천국이 따로 없어요. 내가 천국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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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만들어야..." 20여년간 닻 만드는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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