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 올려 퍼진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 빈소를 밤새 지킨 학생과 시민이 결의대회를 열어 서로 어깨동무하며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고 있다.
유성호
뜬눈으로 장례식장을 지킨 시민들"얘들아, 자가면서 해. 춥다. 아이고." 김제동씨는 장례식장에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건네며 이 같이 말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김씨는 대학생, 세월호 유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장례식장을 오고가는 차와 시민들이 부딪히지 않도록 차의 운행을 돕기도 했다.
장례식장에는 책이나 교재를 보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대학생 박석완(20)씨는 25일 오후부터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는 "26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면서 "이날 오전 6시 30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피곤하지 않을까. 극심한 취업난인데 학점·토익 점수와 같은 스펙 쌓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박씨의 답은 달랐다.
"많은 친구들이 국가폭력으로 백남기씨가 눈을 감은 것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거리에 나가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압박이 크긴 하지만, 이 자리에 나오는 게 더 의미가 있다."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손아무개(21)씨는 교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백남기씨 사건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라면서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 나왔다. 여기에 있는 게 더 큰 공부"라고 전했다.
세월호 유가족 10여 명도 밤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최근 단식과 거리농성에 몸과 마음이 지쳤다. 또한 국정감사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전체회의 참석 등 바쁜 일정이 예정돼있다. 하지만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던 유가족들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으로 자리를 옮겨 밤을 새웠다. 이날 오전에는 유가족들이 경기도 안산에서 이곳으로 출발한다.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백남기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치다가 쓰러졌다. 너무나도 비통하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남기씨는 1년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본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2년 동안 단식·노숙농성으로 아무리 힘들다 해도 오늘 농성을 두고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밥차'는 이날 장례식장에서 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 김학현(50)씨는 1톤 트럭에 온수기, 라면 700개 등을 가져왔다. 라면은 동이 났다. 김씨는 "누군가를 위해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그 마음이 모여 경찰의 침탈을 막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박석운 백남기 대책위 공동대표는 날이 밝은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부검을 막은 것은 밤을 꼴딱 새우면서 힘들게 버텨준 시민들과 온 국민의 성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살인자 처벌, 진상규명의 여망을 모아갈 것이다. 백남기씨를 고이 보내드릴 때까지 장례절차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