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8월 경남 창원의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학생들이 한 공장에서 실습 교육을 받고 있다(사진과 본 기사의 내용은 관련이 없습니다).
두산중공업
적절하지 못 한 일자리, 부당한 처우 등에 방패가 돼줘야 할 교사와 학교가 오히려 바람직한 취업도 필요한 교육도 아닌 현장 실습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이유는 취업률 경쟁이다. 취업률 경쟁은 교육청, 학교, 교사, 최근 도입된 취업 지원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부적절한 업체까지 학생들을 내보내는 현재의 파행적 현장 실습이다.
2016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경기 안양시 한 특성화고 교사는 "하루 7~8시간, 그것도 평일에만 근무하겠다고 하면 학생을 받아주는 업체가 거의 없다"라면서 "취업률에 따라 학교 평가와 예산 배정이 달라지니 학교에서는 취업률에 목맬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박세준 기자, 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그들 "우린 죽음을 실습합니다", <주간동아> 2016.7.6. 보도 참고).학교장 재량으로 고용되는, 대표적인 학교 비정규직인 취업지원관도 문제다. 특성화고 교사들이 다양한 산업체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직접 모으고 걸러내기 어려우니, 학교별로 학생들의 전공과 실습 기회에 적합한 산업체를 물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취업지원관이다. 그런데 이런 취업지원관이 비정규직이다보니, 매년 취업률에 따라 이들의 고용 자체가 위협받는다.
"그러다 보니까 또 이 분들이 욕심을 부리는 거죠, 2교대 업체(처럼) 보내지 않아야 할 데도 이 분들이 추천을 해주고... 교장선생님이 불러다가 '취업률 좀 높이죠'하고 계속 말하고 하면, 정규직도 교장한테 뭐 말하기 어려운데 비정규직이면... '취업률 좀 올리쇼.' 하면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다 보면 질보다는 양으로 가고..." 현직에 있는 특성화고 교사의 증언이다.
현장 실습이 놓인 자리, 불안한 청년 노동물론, 자기 발전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일자리가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혹은 특성화고 졸업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착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해진 청년 노동 전반이 그렇다. 그런 맥락 속에 현장 실습생들의 일자리, 현장 실습이 택할 수 있는 일자리도 놓여 있는 것이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정비하던 만 19세 노동자가 들어오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김군으로 알려진 이 노동자는 특성화고 3학년 때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 보수 업체인 은성 PSD에 현장실습 형식으로 취업했다.
사고 뒤 서울시 진상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은성 PSD와 2015년 새로 계약을 맺었는데, 2011년도 협약 때보다 연 14.4억 원 적은 금액으로 용역 계약을 맺었다. 점검을 철저히 하면 고장 수리가 불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용역 계약에서 고장 수리비용을 뺀 것이다. 사실 연평균 스크린도어 고장건수는 1만2000여 건에 달하고,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에서 고장 수리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임에도 그랬다.
후려친 용역비 책정의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돈이 부족하니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성수역에서도, 2015년 8월에는 강남역에서도 똑같은 사고가 이미 발생했다. 2015년 사고 발생 후,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반드시 2인 1조로 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인 1조 근무는 매뉴얼에만 존재했다. 2명이 해도 위험한 일에 한 명만 배치해놓고 나 몰라라 한 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이 활용됐다. 서울시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은성PSD는 2014년 11월부터 공업고등학교 학생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 현장에 배치했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실습생들은 2인 1조 매뉴얼을 (서류상으로) 지키기 위해 활용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대가 취할 수 있는 일자리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라는 맥락에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일자리도 놓여 있다. 현장실습은 젊은 노동자를 억지로 인기 없는 일자리로 공급하는 파견 업체 역할을 맡고 있다.
청소년, 현장 실습생의 특별한 불리함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에게는 20대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열악함과는 다른 특수한 문제도 있다. 청소년이라서, 나이가 어려서, 사회 초년생이라는 특징은 약점이 되고,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목소리를 막고, 괴롭힘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역시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생으로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2013년 11월부터 일하던 한 학생이, 일하기 시작한지 채 세 달이 되지 않은 2014년 1월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사망 4일 전 회식 때, 입사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동료 A로부터 얼차려를 당하고, 머리를 밟히고 뺨을 맞은 뒤였다. 사건 자체도 매우 큰 스트레스였고, 사건이 밝혀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 결과였다. 이 사건은 2015년 3월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됐지만, 비슷한 사건이 올 해 경기도에서도 다시 발생한 것이다.
"현장실습 시 실습생에게는 야간작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구두로 약속을 받았지만 막상 건설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야간작업을 했다. 게다가 다른 근로자들에게는 야근수당이 지급된 반면, 나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가끔은 현장 반장이 주말에도 불러 일을 시켰다. 답답한 마음에 학교에 연락해 관련 사항을 이야기했지만 '참고 다니라'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참을 수 없어 두 달 만에 실습을 그만두자 학교에서는 나 때문에 후배들이 현장실습을 나갈 회사가 줄어들었다며 교내봉사 징계를 내렸다."(박세준 기자, 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그들 "우린 죽음을 실습합니다", 주간동아 2016.7.6. 보도)다른 현장실습생을 만나도 비슷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군포 특성화고 졸업생 사망 사건에서도 실습을 나갈 때 담임선생님은 '나갔다가 돌아오면 학교에 누가 되니, 꾹 참고 잘 다니라'고 격려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격려였지만, 일터 괴롭힘과 노동 착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족쇄가 된다. 실습생이라고 야근 수당을 안 준 것처럼, 실습생이라고 수습 기간을 두 번 겪게 하고 그 사이의 임금을 적게 주는 사업주도 있었다
직업교육의 목표를 다시 세우는 것부터특성화고 교육 전반, 특히 현장실습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계속 터지고,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부의 정책 방향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특성화고 확대,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으로 한 교육과정 전면화, 중소기업 맞춤형제도, 산업일체형 도제교육 확대 등 전체적으로 '교육'보다는 '기능실습'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특성화고의 교육 목표는 '취업'이 아니고,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기술과 인간, 기술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자부심 있는 기술인이자 노동자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학사 일정 정비, (특성화고) 교육과정 재편, 취업률 경쟁 폐기 등과 함께 적절한 기간과 방법의 현장실습 방안에 대한 고민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실습 하나에 대한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직업 교육, 노동 교육의 큰 줄기를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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