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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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계의 양대 세력은 사림파라 불리는 개혁파와 훈구파라 불리는 보수파였다. 임금인 중종은 개혁파를 전략적으로 지지했다. 마음으로부터 지지한 것은 아니고, 너무 비대해진 보수파를 견제할 목적으로 1516년부터 정암 조광조와 개혁파를 밀어줬던 것이다.
개혁파는 임금의 후원을 받고 있었지만, 아직은 세력이 미약했다. 그래서 삼정승이 이끄는 의정부와 육조판서가 이끄는 실무 행정관청까지는 장악하지 못했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처럼 국정운영을 비판하는 기구들만 장악했을 뿐이었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조광조 진영은 의회는 장악했지만 행정부는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삼정승 중에서 우의정 자리가 비게 됐다. 그러자 중종과 개혁파는 이 자리를 개혁파와 가까운 인물로 채우려 하고, 보수파는 자기 쪽 사람들로 채우려 했다. 개혁파는 안당을 지지하고, 보수파는 남곤·김전·이계맹을 밀었다.
그런데 안당한테는 약점이 있었다. 젊은 개혁파 선비들의 지지를 받은 그는 부드럽고 합리적이었지만, 부하들에 대한 통솔력이 약했다. 그래서 보수파 입장에서는, 이 점만 집중 공략해도 안당을 낙마시킬 수 있었다. 굳이 정치 성향을 따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보수파가 안당을 싫어하고 안당한테 약점도 있었지만, 중종과 개혁파는 어떻게든 안당을 우의정으로 만들려고 했고, 보수파는 임금의 체면을 봐서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불만의 기색을 표출하면서 신경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것이 한양 강진이 발생하기 직전 상황이다.
이런 정국의 혼란을 단번에 정리한 것이 음력 5월 14일의 한양 강진이었다. 지진으로 종묘 위패까지 '놀라는' 대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조선 전체가 동요하는 틈을 타서 중종이 선제적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지진 다음 날인 음력 5월 15일, 안당을 우의정에 임명해버린 것이다.
뒤이어 다음 날인 16일에는 보수파인 심정이 형조판서에 임명됐다. 개혁파 쪽 사람이 삼정승에 진입하고 연립내각이 형성되는 속에서, 보수파 관료가 요직에 들어가는 일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지진의 원인이 개인에 있다고? 종묘 위패가 흔들리는 중대한 상황에서도 중종이 정치 공세를 강화하자, 이에 대응해 혹은 호응해서 보수파와 개혁파도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보수파는 지진의 원인을 조광조한테 돌리고 개혁파는 그 원인을 보수파한테 돌리면서 열띤 정쟁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보수파 중진인 조계상은 중종 앞에서 조광조를 소인배로 몰면서 '조광조에게 천벌이 내려질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조광조 역시 직접적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보수파를 비판했다. 지진 발생 2일 차인 음력 5월 15일 경기도 용인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에 보수파를 비판했던 것이다.
문집인 <정암집>에 따르면, 조광조는 지진을 감지한 직후에 사람들이 듣는 앞에서 "심정이 형판이 되겠구만"이라고 중얼거렸다. 지진이란 불길한 사건을 접하자, 심정 같은 보수파 인물이 잘 되려나 보다 하는 느낌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직후에 실제로 심정이 형조판서에 임명됐다.
요즘 같으면 지진 발생 직후에 정계에서 "누구 때문에 지진이 났다"느니 "누구는 소인배다"느니 하는 말다툼이 나면, 정치권 전체가 욕을 먹을 것이다. 당시 민간에서 이런 반응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이 논란은 개혁파의 승리로 끝났다. 조광조를 비판한 조계상이 파면을 당함으로써 개혁파가 논쟁의 승자가 됐던 것이다. 결국 보수파 때문에 땅이 갈라진 것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지진 안전지대인 한양을 강타한 1518년의 강진은 그렇게 개혁파가 삼정승 중 하나를 차지함으로써 연립내각을 이루게 되는 결과를 남긴 채 역사 속의 사건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정국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한양에서도 강진이 발생했으니, 당시 한양 사람들은 '한양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구나'라는 식의 말들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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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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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때문에 지진이..." 조선 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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