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녘으로 변해가는 유기농 논
유문철
황금들녘 만든 농부들, 쌀값 때문에 시름이 깊다
추석을 맞아 도시 나간 자식들이 고향을 찾아 잠시 활기가 돌던 산골마을은 연휴가 끝나고 다시 고즈넉해졌다. 사람들이 떠나고 마음이 허전해진 농부는 말없이 서있는 벗들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콩밭, 수수밭을 지나 논으로 향한다.
벼가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며 논은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황금들녘이라 했던가? 농사를 짓든 안짓든 우리 마음 속에는 원초적 기억이 있다. 가을 들녘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삭이 여물어 고개를 숙인 논의 모습이지 않은가? 몇 해전인가 일본에서 농사 경험이 없는 도시인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은 농촌에서 떠오르는 첫 이미지를 황금들녘이라고 대답했다.
누렇게 변해가는 황금들녘은 어느 유명 미술관에 걸린 고금의 어떤 그림과 조각들보다도 내 눈에는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보인다. 벼를 벨 때까지 날마다 논은 조금씩 조금씩 노랗게 변한다. 벼이삭은 여물수록 점점 더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불면 파도처럼 군무를 추며 쏴아쏴아 하며 마른 이삭과 잎이 환호성을 지른다.
이 아름다운 논그림을 그린 농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스스로 경탄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름이 깊다. 쌀값이 떨어지다 떨어지다 못해 80킬로 한 가마가 생산비에도 훨씬 밑도는 12-13만원 한다는 흉흉한 소문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유기농쌀 값이야 이보다 낫지만 나만 값을 좀 낫게 받는다고 어디 마음이 편할 손가?
고향 다녀온 도시 사람들이 수입밀가루 음식 덜 먹고, 외식 덜하고 힘들더라도 장 보아서 집밥 한 그릇씩이라도 더 먹으면 어떨까? 이왕이면 마트보다 생협이나 직거래로 밥상 차리면 더 좋다. 그러면 우리 농민들의 꺼진 어깨가 조금은 펴지지 않을까?
추석 연휴가 끝나고 농부는 다시 농사일을 손에 잡는다. 포항에서 나이 지긋한 여사님께서 애써서 농사짓는 모습을 잘 지켜보고 있다며 연휴 마지막날 유기농쌀을 꼭 드셔보시겠다며 쌀 주문을 하셨다. 며칠만에 방아를 찧는다. 도정기가 힘차게 돌아간다. 30킬로가 좀 넘는 콤바인 포대 하나를 넣으면 20킬로 좀 넘게 쌀이 나온다. 이를 수율이라고 하는데 도정율에 따라 70~80프로 사이다.
현미에 가까운 5분도미로 방아찧다가 보면 왕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 나오는 볍씨가 종종 있다. 방아를 찧고 쌀 포대에 담기 전에 볍씨를 골라낸다. 포항 여사님은 전에 구입하던 ㅎ생협 5분도미에도 볍씨가 섞여 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볍씨를 그냥 자루에 넣을 수 없어 눈에 띄는 대로 골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