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차려입고 찾아왔던 그 남자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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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결혼한 남성인 그가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아온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나치다 할 정도로 잘 다려진 양복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가 머물기에 이주노동자 쉼터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용자들 스스로 청소하는 방은 먼지가 풀풀 날리기 십상이고, 정돈되지 않은 침구류와 옷장은 그가 들고 온 큰 가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쉼터에서 생활하겠다고 했다. 딸아이를 매주 만나려면 멀리 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밖에 나갈 때면 꼭 양복을 챙겨 입던 그가 흐트러지기 시작한 건 쉼터에 들어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을 때였다. 그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쉼터 안에서 음주와 흡연을 금한다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한국에 와서 배웠다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후로 그가 양복을 입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헐렁한 반바지와 러닝 차림으로 어딘가를 갔다 올 때면 주머니엔 불룩하게 술병이 들어 있곤 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의 주정은 비슷했다. "나는 홈리스다. 집이 없다"면서 방에서 이불을 꺼내고는 베란다에 놓은 의자나 창고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방에서 자라고 하면 이불만 걷어서 방으로 집어 던지는 통에 같이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음주와 주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쉼터에서 나가야 한다고 몇 차례 구두 경고를 줬지만, 변화가 없었다. 가끔씩은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경찰이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알코올 중독자 치료 센터에 보냈던 게 작년이었다. 치료 경비를 대겠다는 후원자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다시 완치되었다면서 다시 나타난 것은 올해 초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알코올에 의지하고 있었고, 술만 취하면 딸아이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훔쳤다. 그랬던 그가 봄이 오기 전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쉼터에서 사라졌다. 추위가 덜 가셨던 때라 길거리에서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았는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쌀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샀다. 고맙다며 커피를 받아든 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쌀을 들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의 호의를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이 가을, 투쟁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점심 조금 지난 시간, 한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큰 키 때문에 멀쩡하게 있어도 건들거려 보이는 그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방 안에서 자라고 권하자, 그는 "홈리스"라는 말로 대꾸하더니 베란다 의자에 드러누웠다. 이번에는 이불을 끄집어 올 기력이 없었는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아직은 한기를 느낄만한 때가 아니라 그냥 놔뒀지만, 기온이 조금만 떨어지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습관이다.
그가 잠든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홈리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살이 빠지지 않은 것으로 봐서 얼마간이었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육체노동을 했던 모양이다.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 그는 유쾌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딸아이와 아내를 사랑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를 보면 안쓰럽다. 그렇다고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들어가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허탈한 웃음만 짓는다.
그는 가족과 같이 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있기를 기대하며, 그와의 투쟁이 길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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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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