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풍경 industrial complex-3 archival pigment print (2006)
이수철
<환상의 에피파니>나 그보다 먼저 발표되었던 <기억의 풍경>은 모두 복합 생성물이다. <환상의 에피파니>의 경우, 각각의 이미지에서 아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 즉 다리나 들판 등은 모두 사진가가 직접 찍은 것이다. 카메라에 의한 전형적인 생산 방식에 의한 것이다. 거기에 독일 사진가 토마스 루프의 별을 무단으로 가져와 합성시켰다.
그런데 합성은 카메라나 필름 등 전통적 사진의 메커니즘을 통해 한 것이 아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했다. 카메라로 시작했지만 컴퓨터로 완성한 것이다. 이런 생산물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카메라가 종이 되고 컴퓨터가 주가 되어 만들어낸 그 이미지를 포토그라피 혹은 사진이라 부르지 않을 방도는 없다.
후보정이 종이 아닌 주가 된 것은 <기억의 풍경>에서 더 잘 드러난다. 대상을 정하고 그것을 촬영한 것이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하는 기록적 성격이 강한 사진이라면 그것에 후보정을 통해 색을 입히거나 톤을 바꿔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적 성격이 강한 사진이다. 후보정이 보정이 아니고, 본 공정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진가 이수철에게 사진이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선 작업보다 후 작업이 더 우선이 된다면, 있는 대상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포토그라피이지만, 그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사진 후(後)적 존재 포스트 포토그라피라고나 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더라도 사진가 이수철이 갖는 포스트 포토그라피에 대한 철학은 분명하다.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이 비록 컴퓨터라는 기술일지라도, 자신의 그 사진이 기술의 현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되면 안 된다. 기술이란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 사용 목적은 개인의 감성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진은 말하기 방식의 차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사진이 취해온 기존의 방식과 동일하다. 사실 혹은 리얼리티를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가 주는 어떤 느낌을 주려 하는 전통적 예술 방식 그대로다.
2. 전유 : 개인 감성을 위한 미시 이미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