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어느 날. 서울마실을 하며 수레에도 자전거 짐받이에도 가방에도 책을 잔뜩 담았습니다. 이른아침에 길을 달려 늦은저녁에 충북 충주에 닿는 책으로 무거운 자전거입니다. 박현용 님 책을 읽으며 10년 전 예전 일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최종규
자전거 여행을 마친 박현용 님은 '시나리오를 손수 건네어 멋지게 영화판에 들어서기'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아직 이 꿈을 못 이룬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꿈을 꼭 서른에 이루거나 스물에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마흔이나 쉰에 이룰 수 있고, 예순이나 일흔에 이룰 수 있어요. 어쩌면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못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리고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지 못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던 나날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사람들이 굳이 자전거를 달려서 '자동차보다 천천히' 어떤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까닭은 '더 빨리 가야 할 까닭이 없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새롭게 배우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내 삶을 더 깊이 사랑하며 더욱 차분히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자전거조차 아닌 두 다리로 걸어'서 더욱 천천히 마실길을 가기도 해요.
두 다리로 걸어서 지구를 도는 사람이 있어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굳이 두 다리로 걸어서 가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날에는 '걷는마실' 이른바 '트레킹'이나 '도보여행'이 새삼스레 퍼집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으레 걷는 마실이었어요. 천천히 거닐며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쬡니다. 천천히 거닐며 어여쁜 마을에서 며칠쯤 느긋하게 머물기도 합니다. 천천히 거닐며 나무 그늘에서 다리를 쉬지요. 천천히 거닐다가 골짝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기도 해요.
이제는 실망스럽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뭔지 아직 모를 뿐이다. 그저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뿐이다(204쪽).<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덮으면서 내가 예전에 해 보았던 자전거마실을 떠올립니다. 나한테 곁님이나 아이들이 아직 없던 2006년에 한 해 내내 사흘마다 15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어요. 충북 충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린 뒤, 사흘쯤 쉬고 다시 서울에서 충북 충주로 자전거로 돌아왔고, 이러기를 한 해 내내 되풀이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자전거로 보냈어요.
처음에는 팔다리에 온몸이 쑤시다는 생각이었지만 달이 가고 철이 흐르면서 '내 몸' 말고 '길'을 볼 수 있었어요.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며 '바람'하고 '나무'를 볼 수 있었어요. 더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가 아니라 더 즐겁게 달리는 자전거가 되도록 조금씩 거듭났어요. 그때까지 잊거나 놓치던 숨결을 가만히 헤아렸어요.
이제는 시골집에서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숨결을 마음에 담아요. 삶은 늘 배움거리이고, 살림은 언제나 배움잔치라고 느껴요. 배울 수 있는 눈과 마음과 귀와 손이 되기에 늘 젊은 삶이 되는구나 싶어요.
어떤 일을 겪든 어떤 사람을 마주하든 언제나 배우자는 몸짓이 된다면 참으로 젊은 넋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마친 박현용 님은 자전거마실은 끝냈을 테고, 이제 새로운 배움마실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천천히 나아가면 즐겁게 모든 꿈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서른, 여행은 끝났다 - 12,000km 자전거로 그린 미국 여행기
박현용 글.사진,
스토리닷,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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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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