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 고혼 위렵탑, 탄금대공원 중심부에 있다. 이 위령탑 앞에 충혼탑, 뒤에 '감자꽃' 노래비가 있다.
정만진
끝 부분은 '탄금대의 유래' 표지석과 아주 다르다. '탄금대는 달천과 남한강의 합수머리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우며 특히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절경을 이룬다, 탄금정(탄금대공원 중앙부에 있는 정자) 인근에 토성(土城, 흙성)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 현충 시설을 갖추고 있다'라는 마지막 부분은 표지석에 비해 탄금대의 절경을 훨씬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 흔적이 있다는 사실과 충혼탑 및 팔천고혼위령탑의 존재에 대해서도 안내하고 있다.
관광해설사의 집 옆 안내판에는 '팔천고혼위령탑'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탑 앞 안내판은 그보다 한참 긴 명칭, 즉 '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 고혼 위령탑'으로 탑을 소개하고 있다. 안내판의 글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이 탑은 음력 1592년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이 휘하 장졸 8천여 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전적지임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으로, 탑 건립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뒷부분은 '탑 상단에 형상화된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고, 아래 부분의 신립 장군과 4인의 군상(群像, 여러 명의 모습)은 죽음으로써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바위와 바닥 부분의 원반(둥글고 납작한 접시 형태의 물건) 모양은 탄금대를 싸고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 모양을 살려 구성한 것이며, 탑 뒷부분의 부조(평평한 면에 그림이나 글씨를 도드라지게 돋을새김한 조각)는 당시의 탄금대 전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탑을 건립한 역사적 의미를 다룬 앞부분에 견줘 뒷부분은 탑에 깃들어 있는 미술적 표현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쉽고 간략하게 해설하고 있어 새삼스러운 보충 설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안내문을 읽으며, 탑의 실제 모양과 글의 표현을 일치시켜 본다.
신립 장군과 8천 고혼(孤魂, 외로운 혼령)을 기려 세워진 탑 앞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 없다. 두 손을 잡고 잠깐이지만 묵념을 한다. 대장 신립과 그의 장졸들 중 어느 누구인들 왜적과 싸워서 지고, 또 목숨을 잃고 싶었을까. 불가항력으로 패전을 하고, 마침내 죽음의 길을 간 선조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복을 빈다. 탑 앞에 자라 있는 거대한 소나무 고목도 아마 내 마음과 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