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제주43문확상 수상2015년 4월 1일 제주43평화상 시상식서 수상을 한 <화산조> 저자 재일조선인 김석범씨와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사진제공 제주43평화재단
박진우
작가는 <화산도>에서 한반도의 해방공간에서 혼돈의 섬 제주라는 지역적 공간에 민초들의 봉기의 진행 과정에서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하여 당시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냉전구도의 구축을 추구하는 강대국들의 국제질서 재편의 외적 상황과, 조선을 팔아먹고 민중들을 탄압했던 매국노(친일파),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통한 분단 고착 세력들의 내적 상황 등 4·3의 공간적 범위인 제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치와 갈등들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방근은 <화산도>의 중심인물로 제주 성내 부잣집 아들이자 친일파 집안의 아들로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시절 일본 동경(도쿄)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전향을 약속하고 병보석으로 출감함에 깊은 자괴감에 빠져 해방 뒤에도 사회적 활동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과 술을 마시며 세상을 방관자적 자세로 관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방근은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부도덕함을 경계하고,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고 인본주의에 입각해 행동하려고 한다. 그리고 관념주의적인 무장대의 무계획적인 봉기에 대해 비판적이며,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구하는 이승만세력과 서북청년단 등 극단주의 세력에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에 입각해 선량한 양민이나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반성없는 친일협력자들을 증오와 죽임으로서 역사적 청산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강몽구는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독립투쟁가이자 통일정부 수립과 친일청산을 외치는 강직한 인물로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가들을 상징한다. 민중들이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거친 바다를 뚫고 목숨을 건 일본행을 통해 4·3봉기를 준비하고, 봉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뜻을 받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민중들을 지키고자 부단히 실천하는 책임성이 강하고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로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인본주의자로 진정한 시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유달현은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 시대에 전형적인 친일협력자였다가 해방공간에서는 공산주의자로 전향해 투철한 남로당원으로서 활동한다. 제주에서의 봉기가 점차 패배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성내(남로당 당원들의 집결지 및 활동지)의 남로당 조직 정보를 토벌대인 경찰에게 팔아넘긴 후 엄청난 돈을 챙겨 일본으로 밀항하다가 작은 배 위에서 이방근과 탈출하는 제주도민들의 긴장감에서 충격으로 죽는다.
작가는 다양한 친일협력자들이 해방을 통해 전향하였으나 철저한 자기비판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신의 과거에 부끄럽고 치욕스러움을 공개하고 반성해 나가야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오늘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강하게 지적하면서 작품 속에서 청산을 추진하였다.
정세용은 이방근의 사촌으로 기회주의자로 등장한다. 유달현이 일본에서의 친일협력자였다면 정세용은 제주섬 내에서의 전형적 친일협력자로서, 일본의 보고서를 수용한 미군정이 친일협력자들을 재등용할 때 정세용도 경찰로 재등용되었고, 이를 계기로 권력욕망에 집착하여 무장대와 군경간 어렵게 성사된 4․28평화회담을 고의로 왜곡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민중 봉기의 본질을 왜곡하는 반역사적 기회주의자로서 친족인 방근에게 사살당한다. 작가는 이렇게나마 반역사적, 반민중적 기회주의자들의 청산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마완도는 제주에 거주하는 서북청년단의 대표로 민간인들이 사용할 수 없는 권총을 허리에 차고 경건한 제사상에 절을 하는 모습 속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태극기와 이승만의 사진을 강매하고, 거부자들에 대한 폭력과 고문 등 불법의 유사권력으로 제주섬을 아비규환의 장으로 내몰았고, 봉기한 제주도민들을 무자비한 탄압과 주검의 지옥으로 만든 주체들임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미군정은 45년 9월 7일 미육군총사령부가 남한에 군정을 발표하고 9일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사령관 하지중장)을 서울에 설치한다. 48년 5월 1일 제주에서 발생한 오라리방화조작사건(일명 메이데이 사건)이후 미군정청 최고수뇌회의를 제주에서 연다.
군정청장관 딘 소장, 중앙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 민정장관 안재홍, 국방경비대 사령관 송호성 준장 등이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하여 제주 현지관계자인 제주도 군정장관과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국방경비대 김익렬 제9연대장 등에게 보고를 받았으며, 이후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 선거와 함께 제주도민에 대한 잔혹한 토벌정책을 승인하고 추진하는 세력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제주 4·3이 일어난 47년 3월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된 48년 8월 15일까지의 군사와 치안의 잭임은 미군정청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4·3의 책임이 미군에게도 있음을 밝혔다.
<화산도>는 제주4·3이 단독정부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막고자 하는 민족 내부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냉전체계 구축을 위해 미군정과 미국의 뜻이 반영되었고, 많은 피해에 대해서도 미국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