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표지
문학동네
김금희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너의 도큐먼트>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래된 불안한 가정의 초상과 청춘의 고민을, 여러 서브 플롯의 중첩을 통해 오롯이 잘 담아낸 작품이었지요. 아마도 IMF 직후 대학을 다닌 작가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경험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 <너무 한낮의 연애>는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2014년과 2015년에 쓴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지요. 그 중에서도 2016년 '젊은 작가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와 2015년 '젊은 작가상' 명단에 들었던 <조중균의 세계>는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만한 수작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게, 이 두 작품은 사회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상태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과거를 되짚어 나갑니다.
한직으로 밀려나 사실상 퇴직을 권유 받은 주인공 필용이 대학 후배 양희와의 기이한 인연을 되짚어 보거나(<너무 한낮의 연애>), 곱게 자라 출판사 인턴이 된 영주가 출판사 명물인 조중균의 얽힌 사연을 하나 둘씩 알게 되는 식으로요(<조중균의 세계>).
이 작품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분명한 주제 의식 아래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잊고 지냈던 과거가 어떤 식으로 오늘의 위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중균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쉽게 타협하는 바람에 사라져 버린 신념들에 대해 집중력 있게 서술해 나갑니다. 상투적이지 않은 결말 처리를 통해 값진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도 장점이지요.
사실 김금희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때만 하더라도 소소한 플롯의 중첩이 산만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주제의식도 모호했으며, 작가 자신이 판단을 유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의 미숙함에 비한다면 이 두 작품은 정말 일취월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수록된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크다는 것입니다. 후일담 문학의 재치있는 변용이라고 할 만한 <세실리아>나,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우울한 현실을 서스펜스 있게 담아 낸 <고기>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솔직히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전개와 불분명한 이야기의 목표, 무의미한 말 장난 같은 것들 때문에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김금희 작가의 소설들이 우리 마음을 끄는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서서히 왜곡되어 가는 인간성과 가족의 해체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이 나라의 현실이니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더욱더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겠지요.
지난 두 해 동안 아홉 편의 단편을 써 온 것처럼 김금희 작가는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미 빼어난 수작들을 내놓은 바 있으니, 작업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정진한다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다음 번 단편집이나 장편 소설로 만날 때에도 이번처럼 괄목상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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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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