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디 이 총각(제규) 텔레비에 나오면 좋은 대학 간가? 좋은 디(직장) 취직한다면야, 촬영에 응해줘야지”라고 말한 정육점 사장님. 거기서 산 돼지고기로 만든 돈가스
배지영
7월 29일, <지식채널e>의 권혁민 조연출과 정은영 작가가 우리 집에 왔다. 사전인터뷰였다. 제규는 청소년 특유의 '서술어가 뭉개지는 웅얼웅얼 말투'를 썼다. 처음에는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했다. 제작진은 제규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자칭 보물 1호라는 제규의 레시피 노트를 봤다. 단골 정육점에도 함께 갔다. 가게 사장님은 제작진의 질문에 답했다.
"(제규를 가리키며) 여기 자주 오는 총각이여. 학생이라는디 음식을 하드만요. 근디 이 총각 텔레비에 나오면 좋은 대학 간가? 좋은 디(직장) 취직한다면야, 촬영에 응해줘야지." 정육점에서 나와서는 제규가 다니는 집 앞의 시장까지 답사했다. 권혁민 조연출과 정은영 작가는 "촬영하는 날에 친구 데려올 수 있어요?"라고 제규한테 물었다. 말이 없었다. 뜸 들이다가 입을 연 제규, 다시 서술어를 뭉개며 말했다. 나는 "그럴 수 있대요"라고 통역을 했다. '엄마가 대신 말 잘했지?' 하는 마음으로 제규를 봤다. 어? 표정이 서늘했다.
제작진이 서울로 가자마자 제규는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했다. 그 말은 아직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교복 바지가 뜯어진 것도, 카풀 버스를 놓친 것도, 단골 가게에서 맘에 드는 닭가슴살을 못 산 것도, 생협에서 좋아하는 바게트 빵을 못 산 것도, 머리 삭발할 때 끝까지 말리지 않은 것도,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니까.
"엄마가 쓴 글하고 사진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정육점이랑 시장까지 카메라가 따라와서 촬영한다잖아요. 그러면 나는 이다음에 어떻게 장 보러 다녀요? 부담스럽다고요!" 남편은 '신스틸러'급 연기를 선보였다. "억지로 할 필요 없어"라고 진실하게 말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면서. 제규는 "할게요"라고 했다. 하루 지나서는 "안 해요"라고 했다. 다음날에는 또 "할게요". 제규는 자신이 요리를 잘한다고 확신하지 못했다(경연대회가 아니라고!). 촬영하는 것도 두려워했다('유느님'도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남편이 중재안을 냈다.
"네가 요리하는 거를, 아빠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지식채널e>에 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