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의 정신사>(지은이 윤건차 / 옮긴이 박진우 김병진 박이진 남상욱 황익구 / 펴낸곳 한겨레출판(주) / 2016년 8월 19일 / 값 45,000원)
한겨레출판(주)
<자이니치의 정신사>(지은이 윤건차, 옮긴이 박진우 김병진 박이진 남상욱 황익구, 펴낸곳 한겨레출판(주))는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나 가나가와 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로 있는 재일조선인 2세, 저자 윤건차가 일생에 걸쳐 겪어야 했고 살아야만 했던 재일조선인의 삶과 실상을 두루두루 담아낸 내용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이니치로 살아야했던 재일조선인들이 교집합처럼 얽히고 공통집합처럼 겪어야했던 식민지 사람들의 삶, 그런 사람들이 극복하며 살아야 했던 역사, 역사에 드리운 사상과 정신까지를 두루 아우르는 속 깊고 가슴 저리게 하는 웅변입니다.
책 내용은 숨이 막힐 만큼 길고 다양하지만 마디마디마다 울분과 절규가 옹이를 틀고 있고, 구절구절 마다 극복과 극기가 뭉클 거리는 애달픈 사연이자 역사적 기록입니다.
무수한 자이니치들이 주먹밥을 뭉치듯 꾹꾹 '시'로 눌러 읊은 애환, '문헌'으로 남긴 사건사고와 고난, '인터뷰'를 통해 직접 확인하며 채록한 일상, 70여년의 삶을 살며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꿀꺽꿀꺽 넘겨야 했던 자이니치의 실상을 넋두리를 하듯 써내려가고 통곡으로 호소하듯 들려줍니다.
책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단어가 기본적으로 1945년 8월 일본패전/조선해방 이후부터 사용된 역사적 용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1910년 '한국 병합' 이후 일본에서 살았던 조선인들도 포함한 용어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설명으로 자이니치의 역사를 펴나갑니다.
책은 '1장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 2장 해방 이후, 점령 공간의 재일조선인, 3장 한국전쟁과 재일조선인, 4장 노선 전환과 문학 운동, 5장 귀국사업과 4·19혁명 그리고 한일조약, 6장 민족을 둘러싼 갈등, 7장 문학 그리고 가족의 애증, 8장 정치와 인권, 9장 자이니치로 산다'는 것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970년대 들어 한국에서 '제일교포 간첩단 사건' 등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한국과 재일교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중앙정보부나 국군보안사령부 등에 의해 영장도 없이 모국 유학생(한국에 유학하고 있던 자이니치 학생)이 구속되어, 구타와 고문 등으로 '스파이(간첩) 사건'이 적발되거나 날조된 것이다. - 697쪽
북한으로의 귀환과 탈북, 그리고 한국에서 정치범 등 일본에 있어도 안심하고 살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에게 '세 개의 국가'는 그야말로 무자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김대중, 뒤를 이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 정권을 이루었을 때 간신히 인간다운 안식을 조금 누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는 자이니치에게 그저 한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화해'와 '희망'의 계절이었다. - 825쪽
일본인도 아니고, 남한이도 아니고, 북한사람도 아닌 자이니치일본이 아닌 조센진, 남한인도 아니고 북한사람도 아닌 자이니치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운명은 온전히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식민지 국가가 되고, 한국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튄 정치·역사적 파편에서 비롯된 불행한 여정입니다.
아리랑보다 더 기구하고, 가시밭길보다 더 험난한 갈등과 반목 속에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그나마 다행이고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재임 시 간신히 인간다운 안식을 조금 누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는 저자의 회고 자체입니다.
저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두가 조선인이고 모두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내용은 책 읽는 가슴을 철렁하게 할 만큼 공감하게 하는 자이니치의 아픔입니다.
지금의 나는 물론 '혁명가'도 아니고 '공작원'도 아니다. '정치범'도 아니고 '양심수'도 아니다. 하물며 '도망자'도 아니다. 오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해 왔을 뿐, 이른바 '사상범'도 아니고 '전향자'도 아니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건, 지난날 아무도 모르게 발버둥 치면서 그날그날 오로지 일편단심으로 살아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 <자이니치의 정신사> 859쪽
민족일보 조용수에게 사형을 내리는 남한을 지켜봐야 했고, 오무라 수용소에 수용되는 이웃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자이니치의 마음은 피투성이가 될 만큼 서럽고 아픈 세월이었을 겁니다.
혁명가도, 공작원도, 양심수도, 도망자도, 사상범도, 전향자도 아니라고 하는 저자의 항변이 선홍색 피를 토하는 절규로 들리는 건, 지금 이 시간에도 자이니치라서 부역처럼 강요되고 있는 이런 아픔과 저런 부당함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서 입니다.
나는
조선과 일본의
뒤틀린 역사의 사생아
실감 나지 않는 조국애와
어머니 나라의 과거를 심판하는 사이에서
나는 반쪽발이(…)
- <자이니치의 정신사> 643쪽
역사가 오롯이 역사만으로 읽히는 그날이 오면 소녀상 철거에 드리운 명암, 자이니치들이 신세타령을 하듯 읊조린 시구에 스며있는 애환 또한 오롯한 뜻으로 읽힐 거라 생각됩니다.
재일(在日) 1세, 2세, 3세가 살아온 100년, 그들이 살아온 100년 역사와 사상, 100년 역사와 사상에 드리운 정신까지를 실감 나게 조명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자이니치의 정신사>에서 찾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자이니치의 정신사 - 남.북.일 세 개의 국가 사이에서
윤건차 지음, 박진우 외 옮김,
한겨레출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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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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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작원, 정치범, 사상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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