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의 '끝없는 밤'
해문출판사
이 이야기는 '끝없는 밤의 운명'으로 태어난 남자가 '달콤한 기쁨의 운명'으로 태어난 여자를 만나면서 살고 사랑하고 죽는 이야기이다. 1967년에 이 작품을 발표한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작품 중 이 '끝없는 밤'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한다.
왜 그런지까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다 읽고난 후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추리소설이라기엔 너무 슬프고 사랑에 대한 심리 묘사가 매우 디테일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다른 크리스티의 소설과 다르게, 읽고 난 후 이 소설은 이야기의 잔상이 오래 남았고, 한편으로는 슬프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불쾌한 느낌도 있어서, 하루 정도 가벼운 우울증을 얻었을 정도였다.
이 소설은 로맨스적 성격 이외에도 오컬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저주에 걸린 땅인 '집시의 땅'에서 주인공들은 만나고 사랑하고 함께 삶을 건설한다. 그러나 '집시의 땅'에선 누구나 불행해진다는 저주가 내려온다. 그 곳에서 만난 집시 여인은 남자와 여자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어서 이 땅을 떠나라는 예언을 한다.
땅에 관한 오컬트적 미신 요소는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 '열세 가지 수수께끼' 중 하나인 '아스타르테의 신당'에도 나오는데, 그 곳은 라치스 저택으로 오는 사람들마다 크게 다치거나 수술을 받는다. 그 곳에는 아스타르테의 신당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침묵의 숲'이 있다. 그리고 결국 그 곳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또 이 소설은 3인칭을 즐겨 쓰는 크리스티의 작품으로선 드물게 일인칭 화자에 의해 진행되어 간다. 이는 크리스티가 예전에 썼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 등장했던 기법으로, 사건과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일인칭 화자에 의해 펼쳐지므로 객관적이지 못한 대신에 좀 더 깊이 있게 서술이 진행되고, 사물과 과정에 대한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과 기법도 '끝없는 밤'과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거의 일치한다. 일인칭 시점 기법의 한계점으로 인해서일 텐데, '끝없는 밤'은 이로 인해 서정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이 슬프게 읽히는 이유는 사랑과 위선, 증오와 배신이 한데 얽혀서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가운데에서도 '달콤한 기쁨의 운명'은 의심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 슬프고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남자와 여자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발표되던 한 해 전 1966년에 태어난 세라 워터스는 2002년에 '핑거스미스' (나중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 된 작품)를 발표하는데, 두 소설의 얼개가 놀랍도록 서로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