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심야식당> 표지.
?미우
3년 전에 도쿄에 갔다.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등을 구경했더랬다.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던 <심야식당>, 지금 그곳에 갔으면 신주쿠 하나조노 근처 골목길을 꼭 가봤을 거다. 만화의 배경이 되는 곳에 말이다. 물론 밤 12시에 오픈해 아침 7시에 닫는 만큼 쉽지 않았을 테지만.
'심야식당'이 정식 명칭은 아니다. 원래 그냥 '밥집'. 손님들이 심야에만 여는 밥집이라는 의미에서 심야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다. 이 밥집은 심야에만 연다. 손님이 오긴 할까? 많진 않지만 웬만큼 오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밤 늦게까지 야근한 사람이 출출할 때, 밤 늦게까지 술 마신 사람이 해장하고 싶을 때, 2차 이상의 술자리로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 집을 찾을 거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만화에선 심야에 어울리는(?) 부류가 자주 등장한다. 야쿠자, 술집 운영자나 종사자 또는 출입자, AV 배우, 트랜스젠더 등. 식당 주인 마스터는 이 모든 이들을 품는다. 아니, 이들을 위해 밥집을 차렸나 싶다. 이곳은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와 같다. 그들이 어디 가서도 내뱉을 수 없는 솔직한 이야기를 이곳에선 마음껏 할 수 있다. 위로도 받고 응원도 받는다.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누가 와도 차별 없는 마스터,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심야식당의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맥주, 일본주, 소주 뿐이다. 식당이라기 보다 밥집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마스터는 무엇을 주문하든지 모두 만들어준다. 오히려 원래 메뉴인 돼지고기 된장국이 가장 드물게 등장한다. 다만 손님이 뭘 시킬지 몰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돼지고기 된장국을 내놓곤 한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정식이 이 메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두며, 내가 꾸미고 싶은 공간도 이 심야식당과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쪽에는 책방이자 카페를 한 쪽에는 술집이자 밥집인 공간을 훗날 열고 싶다. 하루는 낮에만, 하루는 심야에만 연다. 심야식당과는 달리 손님의 상황을 보고 음료와 책을 권해준다. 역시, 손님의 상태에 따라 술과 안주를 내준다. 일종의 큐레이팅이라고 할까.
목적은 동일하다.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특히, 일상에 지칠대로 지친 이들, 열심히 살아가지만 갈 곳이 딱히 없는 이들. 알아서 잘 살아가는 이들은, 오면 흔쾌히 받아주겠지만 많은 관심을 두진 않겠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만화 캐릭터라 그런지 몰라도 포용력이 더 큰 것 같다. 난 현실 세계의 사람이니만큼 그렇게까지 할 순 없다.
얼굴에 깊은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주인장인 마스터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때 이들과 다르지 않은 삶은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비록 만화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포용력은 어마어마하다. 어느 누가 와도 차별 없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똑같이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다 겪은 이의 깊은 삶의 내공이 묻어난다. 자연스레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김형수 작가가 한 말을 요약하는 것으로 '심야식당'의 존재 가치를 설파하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작가는 중학생 딸에게 말한다.
"저 불빛 아래는 하루에 한 사람도 안 지나갈 수 있다. 당연히 기억하는 사람도 적겠지. 그 가로등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쪽으로 모여들면 어떻게 될까? 우주가 파괴 되겠지?" 하루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불을 밝힌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며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심야식당'을 두고, 마스터를 두고, 그곳에 오가는 손님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심야식당 20
아베 야로 지음,
미우(대원씨아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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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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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 이런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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