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문 사이트 넘비오(NUMBEO)의 조사 '2016년 세계 치안' 지도 화면 갈무리.
NUMBEO
해외 사이트 넘비오(NUMBEO)가 조사한 2016년 세계 치안 순위에서 안전지수가 가장 높은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역설적인 일이다. 무서움에 떨 때마다 나는 늦은 시각에 돌아다닌 '조신하지 못한' 행동을,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자신을, 눈길 '끄는' 옷차림을 탓했다.
어렸을 적부터 "남자는 아빠 빼고 다 늑대"('이성'적인 동물 늑대에게 낯 뜨거운 말이지만)라는 말을 들어온 나는 지금껏 '늑대의 본능을 자극한 잘못'을 한 여자로서 자책하고, 보이지 않는 '늑대'를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남성은 욕구 실현을 위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인식2016년 5월, 서울의 대표 번화가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 없는 한 여성을 흉기로 찔렀다. 그는 화장실에 숨어 앞서 지나간 여섯 명의 남성을 거르고,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죽였다.
범행 당일 붙잡힌 그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조현병을 앓던 정신질환 환자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전형적 '묻지마 범죄'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앓아왔다는 피의자의 병력 이전에 그는 한국 사회에서 '늑대'로 자라왔다. 남자는 넓은 공간을 쏘다니며 몸을 쓰는 운동을 좋아하고 여자는 가만히 앉아 인형놀이를 하는 게 정상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남자는 '약한' 여자를 지켜주면서도 호감이 가는 이가 있다면 거침없이 접근해도 되는 것, 심지어 폭력도 마땅하다는 것. 이 모든 '늑대성'에는 남성은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렸다, 설령 그것이 범죄라 하더라도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설파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명제. 남성 역시 태어나기도 전에 늑대성이라는 그릇된 신화의식 속에 만들어진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 그리고 2016년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