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서점>은 책 아래쪽에 연필로 책값을 적어 놓습니다.
최종규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삶터를 옮긴 뒤로는 단골 헌책방을 '단골'로는 더 드나들거나 찾아가지 못합니다. 이제는 한 해에 한 번이나 두 번 겨우 찾아가서 인사를 합니다. 한 해에 한두 번 찾아가더라도 전남 고흥에서 서울 용산까지는 참 멀어서 고작 한두 시간쯤 책을 보기에도 빠듯해요. 그러나 이렇게 뜸하게 찾아뵈어 인사를 올리고 책을 살피는 동안에도 지난 스무 해가 넘는 나날이 머릿속으로 고요히 흐릅니다.
예전에 이 책꽂이에 어떤 책이 꽂혔는가를 떠올리고, 그 많은 책이 얼마나 많은 책손들 손으로 옮겨 가면서 사랑받았는가를 떠올립니다. 내가 이 작은 헌책방에서 얼마나 많은 책을 만나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었나 하고 그리고, 오늘 새롭게 만나서 기쁜 웃음을 짓도록 북돋우는 책을 되새깁니다.
헌책방 <뿌리서점> 사장님은 1970년대부터 용산에서 헌책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언제나 혼자 책방을 건사하셨어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책방을 열었어요. 설날도 한가위도 늘 문을 여셨어요. 명절이나 한식에는 조상님 무덤을 찾아보신 뒤에 저녁에 느즈막하게 문을 여셨지요.
이곳 단골이라면 누구나 알 텐데, <뿌리서점> 사장님이 조상님 무덤을 찾아보신 뒤에 돌아올 적에는 책방 문에 쪽글을 붙여요. 단골들은 다들 이 쪽글을 보면서 책방 언저리에서 한두 시간을 서성여요. 때로는 둘레 밥집에 들러 밥을 먹고 돌아오고, 다른 책방을 찾아가서 책을 보다가 이곳으로 돌아오지요.
단골인 수많은 책손이 용산 골목마을 한쪽에 깃든 작은 헌책방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까요? 헌책방 단골인 분들은 저마다 책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 마련이라, 몇 시간 동안 책방 사장님을 기다리면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나누곤 했고, 단골이라면 으레 가방에 책 몇 권씩 있으니, 가방에서 다른 책을 꺼내어 읽으며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