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초등학교 퇴임식태안초등학교 전체 교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아내에게 퇴임식 행사를 베풀어주면서 배우자인 나도 초대해 주었다.
지요하
아내가 훈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전교조 교사들이, 또 선배 전직 여교사들이, 그리고 태안초교 40여 명 전체 교직원들이 멋진 송별연, 축하연, 퇴임식 자리를 마련해 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전교조 태안군지회 조합원들, 태안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린다.
40년 교직생활을 잘 마친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축하와 감사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 생각하면 아내가 너무도 고맙고 또 미안하다.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가난한 삼류 문사인 나는 철저히 아내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아내 덕으로 살아왔는데, 복막투석 환자가 된 지금은 더욱 그러하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각하면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 직장 생활하랴, 시부모 모시고 살림하랴, 실속 없이 바쁜 남편 치다꺼리 하랴, 참 분주하게 살아온 나날이었다. 어린나이에 부모와 생이별한 생질아이들과 또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은 조카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일도 아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남편이 누구를 돕는답시고 '깨진 독에 물 붓기'를 한 탓에 월급 다 빼앗기며 산 눈물겨운 수년 세월도 있었다.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고, 빚도 다 갚았으니, 정년퇴임을 하면 부부 함께 외국 여행도 하고 이스라엘과 로마 성지순례도 하리라던 계획도 내가 올해 신장 기능을 잃어 복막투석 환자가 된 탓에 물 건너가고 말았다.
또 나는 나대로 아내가 정년퇴임을 하면 아내에게 노친과 집안일을 맡기고 3개월이나 6개월씩 거저 밥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글을 쓰도록 하는 문인마을에 입주하여 제대로 작품 하나 써볼 계획을 가져보았으나, 그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더욱 미안하다. 지금까지 고생을 시킨 것도 과한데, 내가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못하고 더욱 고생을 강요하게 됐으니 면구스럽기 한량없다. 아내에게 축하와 감사와 위로의 포옹을 해주면서도 내 가슴 한구석은 절절히 아팠다.
아내는 일찍부터 승진 쪽으로는 마음 두지 않고 평교사의 길을 오롯이 걸어왔다. 승진을 위한 '점수'를 쌓는 일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잘 인지한 탓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정년퇴임을 하는 날까지 아이들과 피부를 맞대며 생활할 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마지막으로 담임을 했던 2학년 아이들이 선생님 퇴임 소식에 눈물 흘리고 엉엉 우는 아이도 있더라는 말을 하며 아내는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그런 아내는 학급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기 위해 오늘 하루 더 학교에 간다고 한다. 문구점에 물건을 주문하고 어제 배달을 부탁했는데, 문구점 사장이 약속을 어겨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일이 오늘로 미뤄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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