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향 초상화 조선 유일의 ‘여중군자’, ‘정부인 안동장씨’로 불리나 그녀에게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장계향’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
김정봉
석계와 장계향 사이에 다시 6남 2녀를 두었다. 장흥효와 이시명으로 이어진 퇴계학 계보는 다시 이시명의 삼남 갈암 이현일, 이현일의 아들 밀암 이재, 이재의 외손자 대산 이상정으로 이어졌다. 한 집안이 퇴계학의 계보를 잇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재령이씨 집안이 이함과 이시명에 이어 그 후손들이 대성하여 명문대가의 면모를 갖춘 데는 장계향의 공이 크다. 두 시숙과 동서가 사망하는 흉사가 겹친 집안에 들어와 흉사를 수습하고 일곱 아들 모두 훌륭히 키워 명문대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장계향은 어려서 초서를 잘 써, 당대 최고의 초서 서예가 정윤목을 탄복케 했고 <학발시>, <성인음>, <소소음> 등 시를 짓는 데 재주를 보여 남을 놀라게 했다. 그림, <맹호도>를 남겨 그야말로 시서화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현모양처, 그녀 성품이 여기까지였다면 이씨 집안의 영광일 뿐, 지금 우리가 그녀에 열광할 이유가 없다.
그녀 성품은 집안의 영달에 급급하지 않았다. 집안을 넘어 이웃을 생각하는 공동체의식이 강했다. 기근으로 이웃이 고초를 겪자 나랏골에서 그랬듯 많은 재산을 내놓았다. 그것으로 모자라면 도토리 죽을 쒀, 가난한 자, 배고픈 자를 구제하는 데 성심을 다했다.
21세기에 장계향을 되살려낸 것은 <음식디미방>이다. 70이 넘은 나이에 우리의 음식문화가 대대손손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 끝에 한글로 된 조리서를 펴낸 것이다. 단순한 음식 레시피가 아니라 과학과 인생, 철학이 담겼다. 이 책은 현재 폭발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300여 년 전의 음식문화를 계승하려는 전문가는 물론 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장계향은 매사에 성(誠)을 다한 여성이었다. 성은 그녀의 인생철학인 셈이다. 자식으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성을 다한 것은 물론 개인을 넘어 이웃, 공동체로 인생의 폭을 넓힌 여성이었다. 그래서 조선 유일의 여성군자라 불린다. 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가 되면서 '정부인 안동장씨'라 불리기도 하나 그녀에게 '장계향'이라는 이름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한 여성으로 당당히 이름을 남긴 것이다.
두들마을 집들과 굴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