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사과 프로젝트 화면공씨아저씨네는 B급 사과의 가치에 주목했다. 과일은 모양이 아니라 맛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을 보여주었다.
공석진
공 대표의 사진은 SNS를 통해서 알려졌다. 농촌과 농산물을 찍은 그의 사진 때문인지 그에게 사진 강의 요청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농민 교육계에서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농민 교육을 다니면서 아까운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어떤 교육과정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교육에 오시는 분들은 교육을 안 받아도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미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뭘 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그는 특히 농민들에게 홈페이지를 만들게 하고,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를 운영하게 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강의 한두 번 듣고 온라인 직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농민들이 좋은 과일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공씨아저씨네에서는 과일의 크기나 모양에 따른 선별은 하지 않습니다. 크기도 작고 모양도 별로인데, 맛까지 없으면 아무도 안 삽니다. 맛만큼은 책임지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농민들이 이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상품성이 없다고 외면받는 B급 사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상품이 된다. 과일은 맛있으면 되지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는 평소의 지론을 시도해보고 있다. 공 대표는 아직 수익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연연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소비자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을 거침없이 말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과일의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오로지 당도입니다. 달기만 한 게 과일의 원래 맛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제주도 감귤 농사지으시는 분들은 감귤 특유의 톡 쏘는 맛인 산미를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원래가 어느 정도 산미가 있는 게 감귤인데도 말입니다."그는 과일이 맛없다고 불평하는 고객들에게는 조건 없이 다른 상품을 보내준다. 당도로만 평가되는 과일 맛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맛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고객과의 신뢰를 이어가는 힘이라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농촌기획자라고 정의하는 박 대표는 또 다른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여러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지역특화산업의 예산규모를 보면 전문가가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농촌 기획 분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야에 비해서 예산규모는 너무 작아 진짜 전문가들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런 차이가 결국 오늘날 고만고만한 농촌을 만드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사업기획을 잘한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크게 실패할 확률은 줄여준다. 우리 농촌은 그런 실패를 감당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박 대표는 많은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제대로 된 기획을 통해서 알찬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촌사업이란 게 지자체장부터 담당 공무원, 지역 농민과 외부 전문가들, 그리고 도시의 고객들까지 합이 맞아야 성공할 수 있는 고난도의 사업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경계를 걷어내고 사람을 잇다, 두 청년이 꿈꾸는 농사 박 대표와 공 대표는 최근 함께 농촌사업을 기획하는 일에 도전했다. 과일 주스를 만드는 회사와 단양지역의 사과 협동조합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사과주스를 만드는 기업은 시장 가격보다 조금 비싸지만 품질은 월등한 사과를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어서 득을 본다.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가 생겨서 소득을 높일 수 있다. 주스를 짜고 남은 찌꺼기는 지역의 양계농가와 연결했다. 사과를 먹고 자란 계란은 지역 내 순환생태계의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토양관리에 중점을 둔 친환경 사과재배 방법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된다. 청년들의 실험적인 프로젝트는 지역의 농촌생태계를 생동감 있게 엮어냈다.
"서로 다른 두 영역 사이에서 일하는 경계를 걷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사회경제 영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꿀벌에 비유합니다. 꿀벌이 많아지면 더 적은 재원으로 여러 이해 주체들 사이에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농사펀드를 처음 구상할 때도 '서로 간에 잘 흐르지 않으니 우리가 흐르게 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씨아저씨네도 경계를 걷는 꿀벌로 볼 수 있습니다."그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들의 사업모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두 청년은 개별농가 단위에선 어렵지만 함께 뭉치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여러 경제 주체들 간의 흐름을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농촌 현장을 누비면서 느낀 경험에 비추어볼 때 당연히 부정적인 반응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농촌의 에너지가 너무 낮습니다. 혁신적인 스파크가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으면 농촌은 힘이 빠진 상태가 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좋거나 나쁠 수 있지만 이런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박 대표는 우리 농업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기업의 진출로 초래될 수 있는 불안감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농촌을 대상화하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이 도구로 생각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농촌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명징하게 보이는 문제인데 기업은 못 보거나 또는 애써 무시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기업과 농촌 전문가들 간에 토론의 자리가 많아져서 그 간격을 좁힐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의 이야기처럼 농촌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박종범 대표와 공석진 대표는 미래의 트렌드를 다르게 해석했다. 미래라고 해서 식물공장에서 생산되는 채소만 먹고 살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농업은 새로운 기술로 크게 변해가겠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많은 소비자들은 LED 아래서 자란 채소가 아니라 태양 빛을 제대로 받은 농산물을 찾을 것이다. 그들은 이 지점에서 농촌의 미래를 본다. 농촌의 가치를 인정하고 도시와 농촌을 이어줌으로써 농민들을 응원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기업이라면 숙명적으로 맞서고 있는 수익이라는 괴물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싸움처럼 보였다. 농사펀드는 그들을 주목받게 했던 사업모델이 발목을 잡는다. 농민들의 스토리를 발굴하는 데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데 반해, 후원하는 농가 대부분이 소규모다 보니 펀딩이 성공해도 큰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공씨아저씨네 역시 사업모델 자체가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객은 공 대표 개인의 SNS 네트워크 범위를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농사펀드는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개인 맞춤형 농산물 제공 회사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공씨아저씨네는 더 많은 농민들을 자신의 네트워크에 소개하는 일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힘들지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또 많은 소비자들은 그들의 노력을 지지하면서 그들이 지켜가고 있는 농촌의 가치를 위해 지갑을 열 것이다.
"농업 분야에 청년들이 뛰어들 수 있는 여력은 아직 많습니다. 요즘 들어 농업 전후방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중간다리 역할을 잘해야겠죠. 우리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책임감도 많이 느낍니다."박 대표는 농촌기획자로의 책임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들이지만 이젠 세심하게 기획하지 않으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가치를 청년들과 함께 지켜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공 대표는 농촌을 발랄하게 해석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특색 있는 농산물을 맛보는 특권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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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한 - 준비 안 된 사람들>의 저자로 우리나라 농업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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