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30일에 나온 <조선총독부관보> 마지막호. 광복 후에도 그 해 8월 22일, 25일, 28일, 30일에 걸쳐 네 차례나 <조선총독부 관보>가 나왔다.
이태룡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조선총독부관보가 네 차례나 나왔다. 그 해 8월 22일과 25일, 28일에 이어 30일에 마지막으로 나왔다.
그동안 일반인은 조선총독부관보를 쉽게 볼 수 없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관보를 영인해서 '활용시스템'을 구축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완성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검색이 가능하다가, 전체 관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난해 완료했다.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수석연구위원인 이태룡 문학박사가 <조선총독부관보>에 실린 '사형 집행' 기사를 정리한 자료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어느 의병장과 광복지사의 사형이 무엇 때문에 집행됐고, 더불어 순국일을 알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자료다.
사형집행 666차례, 총 1200여 명 ... 광복지사 등 817명일제강점기 사형은 총 몇 차례, 몇 명한테 집행되었을까? <관보>에는 '사형집행'이라는 기사 제목과 함께 어디에서 재판을 받았고, 언제 어디서 사형이 집행되었는지 기록해 놓았다.
<관보>에 '사형집행'이라는 기사는 총 666회 나오는데, 적게는 1명, 많게는 20여 명을 한꺼번에 사형집행했다. 내란, 살인, 모살(계획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총 1200여 명이다.
이태룡 박사는 "사형집행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폭도', '강도', '강도상해', 모살', '내란', '치안유지법 위반' 등이라 해 놓았다"면서 "실제로 의병투쟁이나 광복투쟁과는 무관한 실제 강도 살인죄를 범한 자도 있겠지만, 당시 의병장이나 광복지사에게 씌워진 죄명이 그러했다"라고 밝혔다.
이태룡 박사는 이들 가운데 의병·광복투쟁하다 피체되어 사형집행으로 순국한 의병장과 광복지사는 817명이라 했다. 그런데 이들 중 우리 정부로부터 서훈받은 사람은 113명에 불과하고, 700여 명은 아직 서훈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박사는 서훈된 113명의 <독립유공자공훈록>과 <관보>의 사형집행 날짜를 비교해 보면, 순국일자가 틀린 사례가 48명(음력으로 환산하면 맞는 경우 4명 포함)으로, 비율로 따지면 40%가 넘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