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저자 오찬호, 동양북스, 14500원
김예지
개저씨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었'다. 짧은 치마 입지 말라며 '친절'하게 훈수 두는 친척 오빠, 상대의 기분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이상한 농담을 던지는 직장 상사, 처음 보는 이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시전하는 택시 기사까지.
무궁무진한 무례와 무리수의 세계를, 그동안 그냥 눈감아줬다. 아니,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 규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제기하기엔, 이들은 너무 '보통'의 사람들. 무례가 쉽게 용인되는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간 '예민한' 사람으로 몰리기 일쑤다. 참고 넘기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그래서 이 '문제적' 사람들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개저씨'란 단어가 등장했다.
"... 개저씨는 '신조어'일 뿐이지 새로운 인간의 등장을 뜻하지 않는다. 개저씨는 김치녀, 된장녀, 맘충과는 성격이 완전 다르다. 이 용어들은 주로 약자를 향한 강자들의 낙인이다. 하지만 개저씨는 정반대다. 오랫동안 짓눌린 자들의 미세한 저항이 모이고 모인 이유 있는 반항이다. 지금껏 이들은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의 부당함을 인지했고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으로 수군거리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어떻게든 피드백하는 용기를 보였다. 이 정도면 혁명적이지 않은가?"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96쪽
인터넷에는 자신이 개저씨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개저씨 체크리스트'가 떠돌고, 유명 개그 프로그램에서마저 개저씨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콩트(<개그콘서트>의 '게놈 프로젝트', '아재씨' 등)를 한다. 아주 약간, 세상이 변했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성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타인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대체,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개저씨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이제야 이 물음을 던진 것뿐이다. 남은 과제는 치열하고 끈질기게 논의를 이어가는 것. 한 남자가 말을 보탰다. 사회학 연구자 오찬호씨다.
오씨는 지난 7월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책을 냈다.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란다. 그 남자엔 본인도 포함될 터. 시작부터 "20대 중반까지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닐 정도"로 "지독히도 보수적"이었다고 고백하는 그가 보기에도 이상한 한국 남자를 '군대', '의리', '가오' 등의 키워드로 파헤친다.
사실, 책 내용은 그리 새롭지 않다. 저자 본인이 인정하듯, 여성학 개론서 정도의 내용을 담았다. 이미 많이 나온 이야기란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낸 이유는 뭘까. 한국 사회는, 이 '뻔한' 설명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