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거위벌레
농업유전자원정보센터
1cm의 작은 몸에 거위처럼 긴 주둥이, 도토리거위벌레
광양 백운산에는 음흉한 정원사가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몰래 가지를 툭 잘라낸다. 나무를 다듬기 위해서? 아니다. 그 정원사의 목적은 오로지 '내 자식'을 위해서다. 1cm의 작은 몸에 거위처럼 긴 주둥이를 가진 '도토리거위벌레'가 바로 그 주인이다.
백운산을 거닐다보면 우리는 종종 허공에서 떨어지는 도토리가지에 머리를 얻어맞곤 한다. 어떤 놈인가 하고 고개를 올려다 보면 하늘은 울창한 참나무 잎들만 무성하다. 그리고 또 저쪽, 나뭇잎을 낙하산 삼아 가지 하나가 더 떨어진다.
어느새 길바닥은 몸을 내던진 도토리 가지로 수북하다. 도토리의 자살인가? 떨어진 도토리 가지를 주우며 생각한다. 그러나 매끈히 잘려나간 가지 끝을 보면, 꼭 누군가 가위로 도려낸 것만 같다. 사람의 소행인가? 하지만 이 땡볕 더위에 나무 위에 올라가 도토리를 떨어뜨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토리묵을 너무 사랑하는 미식가라면 모를까.
범인이 새끼손톱보다 작은 '도토리거위벌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잇몸이 시큰했다. 가는 주둥이로 질긴 나뭇가지를 잘라내는데 몇 번을 베어 물었을까, 벌레의 턱관절이 괜스레 걱정된 것.
그것도 가지 하나가 아니라 20-30개의 가지를 벌레 한 마리가 다 자르고 다닌다니, 아마도 지금 그는 임무를 마치고 나무 위에 벌러덩 누워 얼얼해진 주둥이를 잡고 시름시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무를 자르는 것은 순전히 자식의 탄탄한 미래를 위해서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딱 이맘 때 쯤, 도토리 열매에 구멍을 내고 산란관을 꽂아 알을 낳는다. 설익은 도토리의 단단한 껍질을 뚫기 위해서 반나절을 꼬박 주둥이를 쳐 박고 돌고 또 돈다. 그렇게 뚫은 도토리가 과육이 영 시원찮으면 과감히 포기하고 더 맛있는 도토리를 찾기도 한다.
자식에게 최선의 밥상을 차려준 다음에는 안전히 땅으로 안착시키는 과정을 밟는다. 곧 다가올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서는 땅속에서 동면을 해야 하는데, 나무에 매달린 채로는 어린 애벌레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의 안전한 생을 위해 엄마 도토리벌레가 대신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도토리벌레는 알을 낳은 뒤, 열매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의 가지를 자르기 시작한다. 나뭇잎을 몇 장 매달고 떨어뜨려야 충격이 완화가 돼 애벌레가 다치는 일이 없기 때문. 그렇게 입으로 톱질하는 데 또 한나절을 보낸다.
그렇게 도토리거위벌레는 산란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식의 생을 위해 일하고 또 일하다, 마침내 자식을 부드러운 흙모래 위로 안전히 보내고서야 여생을 마무리한다.
지구 온난화로 거위벌레 유충 증가, 야생동물의 식량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