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당마을 굴뚝연당마을은 동래정씨 정영방이 숨어 살기 좋다하여 정착한 후, 후손들이 집성마을을 이뤘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굴뚝은 낮거나 숨어있다. 사진 속 굴뚝도 연기구멍이 굴뚝 몸체에 배꼽만큼 돋아있는 ‘배꼽굴뚝’이다.
김정봉
영양은 예전에 고은(古隱)이었다. 유래야 어찌되든, 이름만 봐도 풍광이 수려하고 숨어 살기에 좋은 고을이다. 외지기로는 어느 고을에 뒤지지 않는다. '육지 속 섬'이라 한다나? 기묘사화, 왜란과 호란, 양란으로 사회가 어수선할 때 명문가들이 숨어 살기 좋다하여 몰려들었다.
400년 전, 영양 일월면 주실마을에 한양조씨, 영양읍 감천마을에는 낙안오씨, 석보면 두들마을에 재령이씨 집안이 터 잡고 집성마을을 이뤘다. 영양은 '문인의 고을'로 불린다. 문향(文鄕)이 되기까지 이 마을들은 두둑한 배경이 되었다. 청록파시인 조지훈은 주실마을에서, 항일시인 오일도는 감천마을에서 났고 작가 이문열은 두들마을에서 자랐다.
영양의 인물로 일생을 혁명적으로 살다간 두 여성을 빼놓는다면 서럽다 할 것이다. 석보에서 태어난 남자현(1872-1933)은 여성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매진,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렸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역)의 실제 모델로 알려지기도 했다. 장계향은 석계 이시명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조선 유일의 여성군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두들마을에 살면서 최초로 한글로 된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썼다.
한양조씨, 낙안오씨, 재령이씨 외에 사회혼란기에 영양을 숨어 살기 좋은 곳으로 여기고 정착한 또 한 인물이 있었다. 동래정씨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 용궁현(현 예천)에서 태어났으나 1613년, 입암면 연당마을에 들어와 서석지(瑞石池) 정원을 꾸미고 은둔하였다.
조선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