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현듯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현실 정치가 그만큼 무책임하고 불의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숱한 의혹이 제기된 우병우 민정수석을 끝까지 감싸고 도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측근 비리 의혹에 다른 태도를 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우 수석에 대한 의혹을 정권 흔들기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 청와대에서 쏟아져 나온 격앙된 반응들은 그가 이번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 청와대는 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언론과 여론의 행태를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식물정부 만들기'와 '우병우 죽이기'로 단정 지었다. 언론에서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과 감찰 과정에서 드러난 민정라인의 조직적 감찰 방해 행위조차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는 박 대통령이 '우병우 흔들기'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 대통령의 맹목적인 측근 감싸기는 친인척 측근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박 대통령 스스로가 도입했던 특별감찰관의 감찰 결과조차 부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유출을 문제 삼고 있는 청와대가 정작 우 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은 문제 삼지 않고 있다는 점은 코미디나 다름없다. 본말이 전도된 박 대통령의 자기부정은 '우병우 지키기'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늠케 한다. '우병우'는 곧 박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절대 권위이자 권력의 상징이다.
박 대통령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집착과 방어기제는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우병우 사태로 야당과 언론, 여론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는 박 대통령의 상황과 2003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처했던 상황은 별반 차이가 없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측근 비리 문제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맹폭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측근 비리를 헤쳐나가는 방식에서 두 사람은 판이한 길을 선택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최 비서관이 지난 20년 동안 저를 보좌해 왔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밝혀지면 대통령인 제가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라며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사과는 고사하고 우병우의 '우'자도 꺼내지 않는다. 한 사람은 측근 비리 의혹에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내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측근 비리에 대처하는 두 대통령의 자세가 이렇게나 확연히 다르다. 법치가 훼손되고 원칙과 공정이 무력화되고 있는 시대, 측근 비리를 대하는 두 대통령의 상반된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있는 무엇이 박 대통령에게는 없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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