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토엔씽에서 만든 스마트화분용 센서
남재작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테슬라가 만드는 전기자동차는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면 연비가 더 좋아집니다."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우리가 만드는 식물 저널링 소프트웨어도 계속 성능이 개선되어 갈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키우려고 생각하지 못한 식물도 키우게 될 겁니다. 똑같은 작물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키워야 합니다. 사용자 데이터가 모이면 각 사용자의 환경에 맞게 식물을 키우는 방법도 업데이트되는 거죠."엔씽이 만든 두 개의 앱을 깔아 보았다. 먼저 '플랜티(Planty)'를 깔았다. 이 앱은 스마트 화분인 플랜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앱이다. 스마트폰으로 화분의 상태 - 온도, 습도, 조도 - 를 모니터링 하고 물을 주는 활동을 원격으로 할 수 있다. 플랜티 화분을 가지고 있지 않아 테스트할 수는 없었지만 플랜티를 편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식물을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Life-스마트재배일지' 앱을 깔았다. 이 앱은 식물을 키우는 활동을 간단하게 아이콘을 선택하여 기록할 수 있게 만든 앱이다. 식물의 사진을 찍고 식물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김 대표는 2만 명 정도의 사용자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류의 저널링 소프트웨어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널링의 기본은 기록이다. 무슨 식물을 언제 심었고, 물을 주고, 병해충이 생겼는지를 기록한다. 그는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활용하려고 한다. 이를 그는 '레시피'라고 부르고 있다. 식물 재배를 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와 노하우의 모음집이다.
엔씽이 만든 두 가지, 플랜토와 라이프가 결합하면 어떤 '케미'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상상해보았다. 옥상의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부는 자신이 키우는 작물 및 재배환경과 가장 유사한 사용자의 재배일지를 다운받는다. 아니면 여러 사용자의 데이터를 추출하여 최적의 재배방법을 가져올 수도 있다.
플랜토 센서를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기존의 자료와 비교하면서 재배환경을 조정한다. 데이터가 자동으로 축적되면 재배법에 대한 이력이 만들어지고, 소비자는 특정한 환경에서 자란 농산물을 구매한다. 앱의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더 많은 작물과 재배방법에 대한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과연 가능할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김 대표는 더 치고 나간다.
"우리는 화성에서 농사를 지을 겁니다. 우주에다 농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물론 이런 게 당장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70~80%는 되는 것 같습니다."10년 후에는 김 대표의 바람처럼 우주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재배일지가 뜰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면 언젠가는 일어난다. 일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상상이 부럽게 느껴졌다.
우버 같은 농업, 가능할까? "먹거리를 키우는 일은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농촌으로 가는 것은 다른 문제죠. 왜 전업 농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미래에는 사람들이 서너 개의 직업을 가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버 기사도 하고, 호텔 주인도 합니다. 퇴근하면 텃밭이나 옥상에서 작물을 키우는 농부가 될 것입니다."우버가 등장하기 전까지 택시기사가 되는 방법은 택시회사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에어비앤비가 등장하기 전까지 호텔업은 자본가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반면에 누구나 농부였던 시대에서 이젠 국민의 불과 5, 6%만 농부인 시대가 되었다. 그는 다시 모두가 농부인 시대를 만들고 싶어 했다. 모든 국민이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농업을 혁신하자고 하면서, 천 년도 더 된 방식을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뭡니까? 옥상에서 채소를 키워 먹으면 저는 농부입니까? 시장에 내다 팔면 저는 농민입니까? 저는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가 추구하는 농업이 내가 생각하는 농업과 같지는 않지만 그가 바라보는 농업이 우리가 맞이할 미래와 더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은 농민들이 하는 것이란 오래된 명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걸 느꼈다.
"도시의 노동자랑, 농촌의 노동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과거의 농민을 공감해 줄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듭니다. 지금 은퇴자는 농촌의 향수가 남아 있어 농촌으로 가지만, 지금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농촌을 이야기하면 '거기 왜 가?'라고 합니다."그의 말처럼 과거의 농업을 고집한다고 농촌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청년들이 농업으로 들어오지 않으면서 우리 농촌은 점점 고령화되어 간다. 농촌 인구 구성을 보면 60대 이상이 60%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농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바람처럼 모두에게 친숙한 농업을 하루 빨리 만드는 게 대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엔씽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엔씽이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시대의 트렌드가 되는 키워드를 기가 막히게 조합해 냈다. 사물인터넷(IoT), 크라우드펀딩, 그리고 농업.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주장했듯이 농업은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미래산업이다. 그들은 창업대회부터 정부의 R&D 지원까지 창조경제 열풍도 적절히 잘 활용했다. 농업을 미디어 산업으로 정의 했듯이 그들 역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엔씽은 디바이스 제조업에서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전문가의 지적처럼 디바이스 매출을 높이고 플랫폼 사업에서 매출을 만들어 내는 게 관건이다. 이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는 그들이 꿈꾸는 디바이스와 서비스 플랫폼, 모바일 커머스를 연결하는 개인용 스마트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농민인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엔씽은 올해 6월부터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 농원'에서 제공하는 온실에서 직접 딸기를 재배하는 일을 시작했다. 실제로 농장에서 데이터를 모아 '레시피'를 만들어 가는 기초를 다져가고 있다.
김 대표는 그를 도와주고 있는 창업지원시스템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농장이 필요할 때 농장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과 연결되었어요. 딸기 재배는 또 전문가가 와서 도와줍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창업에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군 이래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대란 말이 그저 그런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끝으로 김 대표에게 미래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역시 젊은이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5년 후의 계획 그런 거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세상이 바뀌어 가는데 어떻게 길을 정해 놓고 갈 수 있어요."다사카 히로시는 <슈퍼제너럴리스트>에서 과거의 비즈니스가 등산가의 전략이라면, 요즘은 파도타기 선수의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등산가는 목표지점까지 분명히 거쳐 가야 하는 코스가 있는 반면에, 파도타기는 선수는 그때그때 파도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요즘 같이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에 먼 미래를 계획한다는 게 오히려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런 유연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 대표와의 토론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뭔가 뚜렷한 실체를 찾기가 어려웠다. 김 대표 스스로도 어떤 말을 하는 걸 조심스러워 했다. 그 말 때문에 남들에게 고정된 이미지로 남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는 결코 이 말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파도의 크기와 방향에 따라 자세를 바꾸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느 스타트업들처럼 엔씽 역시 많은 시련을 거쳐 갈 것이다. 김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지금처럼 힘들 줄 알았으면 후배들에게 창업하란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문장 속에서 벤처기업가의 고뇌가 느껴졌다. 그가 꿈꾸듯이 "모두가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어연번듯한 모습으로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길 희망해 본다.
[연재] 농업에서 길찾는 청년들1편 감자로 60억 매출 올린 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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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한 - 준비 안 된 사람들>의 저자로 우리나라 농업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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