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시내로그로뇨는 리오하 주의 주도로, 와인으로 유명하다
정효정
사흘 전, 에스텔라에서 헤어졌던 다니엘이었다. 하지만 헤어진 다음날. 로스아크로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였다. 종달새처럼 한국 동생이 내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언니! 언니! 다니엘 왔어요.""어제 작별인사도 했는데?""지금 리셉션에 있어요."영문은 모르겠지만 다니엘이 왔다. 지금 이 숙소에 남은 방은 40인이 묵는 이 공간밖에 없으니 그는 이 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일단 너무 반가워하는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2층 침대에 반쯤 기대앉아 카메라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 발을 건드린다. 다니엘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에스텔라에 하루 더 묵는다더니?""별로 할 게 없는 동네여서. 차라리 로그로뇨가 대도시니까 거기서 하루 더 묵을래."그렇게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싱겁게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난 방금 전까지 산소가 부족할 정도로 답답했던 40인실이 순식간에 맑고 향기롭게 변하는 기적을 보았다. 지저스의 재림이었다. (관련 기사 :
산티아고 순례길, 한밤중 숙소에서 생긴 일)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가 물었다로그로뇨로 향하는 날, 이날은 총 28km를 걷는 긴 코스였다. 길이 지겨워지고 있는데 저쪽 벤치에서 앉아있던 누군가 손짓을 했다. 다니엘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사과를 먹으며 잠시 쉬고, 그는 문자를 마저 보냈다. 안보는 척 하면서 흘깃 보니 문자를 보내는 손길에 짜증과 답답함이 묻어있었다. 순간, '여자친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부러지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살면서 저절로 발휘되는 능력 중 하나다. 아마 여자친구가 말을 쏟아내고, 그가 방어하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그가 스마트폰을 껐다. 그냥 모르는 척하며 함께 길을 걸었다. 함께 걷는 길은 여전히 즐거웠다. 그는 내게 무화과를 따주고, 스페인어 숫자를 가르쳐주고, 갑자기 한국어 노래를 부르겠다며 엉터리 한국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 그에게서 나왔다.
"...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