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 별관(2001)
신동필
신동필의 첫 작품은 1999년에 연 <교토 40번지>다. 대학 졸업 후 그의 말대로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교토 40번지를 만나게 된다. 운명적인 만남이라지만 사실 그의 가슴에 묻힌 민족에 대한 정념이 당긴 필연이었으리라. 사진가는 교토 40번지에서 강제 징용 1세대들을 만나 그들의 처절한 역사를 담는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는 어느덧 '우리는 하나다'가 되고, 그 우리는 일본에 대한 우리로 확장된다.
그 연장선에서 신동필은 원폭 피해자, 민족 학교와 관계를 맺는다. 권철이 야스쿠니에 꽂히고, 양승우가 신주쿠에 꽂힐 때 신동필은 민족에 꽂힌 것이다. 신동필은, 누구나 그랬을 듯, 교토 40번지를 암울함과 '희망 없음'으로 재현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처박고, 철조망에 갇혀 있으며, 그냥 멍 때리고 있거나 하염없이 저 쪽만 쳐다본다. 아픈 세월의 흔적은 주름진 얼굴, 깊게 패인 손, 퉁퉁 부은 발에 담겨져 있고, 담배와 약봉지가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 준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끝내진 않는다. 신동필은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온 대부분의 그 투사들이 그랬듯, 대동 세상에서 하나 되는 민족을 찾는다. 마을 사람들이 명절에 모여 잔치를 하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는 장면을 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보라, 비록 힘없고 멸시당하며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우리' 아닌가, 결코 잊지 말아야 되는 우리 핏줄 아닌가, 라는 메시지다. '우리는 한 핏줄'은 2004년 작업인 <재일 민족학교>가 그 바통을 이어 받는다. <교토 40번지>에 비해 밝고 희망적이다. 일본어 책과 국어 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워는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디아스포라임을 보여준다. 표정은 항상 밝고, 당당하며,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신동필의 핏줄에 관한 노래로 부르는 기록은 '위안부 할머니'와 '원폭 피해자'로 이어지면서 인물 사진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 한(恨)의 세월, 필설로는 말할 수 없는 그 세월을 사진 같은 단면적인 매체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인물 사진이다. 인물 사진을 통해 사진가는 은근히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 한과 세월을 독자가 읽어내야 한다. 역사가 기록하는 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읽는 사람의 것이 되기도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