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계백>의 의자왕(조재현 분).
MBC
백제 의자왕은 집권 19년 동안 약 100개의 신라 성을 빼앗았다. 근초고왕이나 고구려 광개토태왕·장수태왕만은 못해도, 그 역시 자기 나라 영역을 크게 넓혀놓았다. 물론 전쟁은 나쁜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열심히 전쟁을 벌인 목적 중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의자왕을 비롯해 옛날 군주들이 전쟁을 벌인 본질적 동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나라든지 간에 옛날에는 전쟁이 빈발했다. 몇 년이 멀다 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때가 많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영토가 한반도로 고착된 고려시대 중반 이전만 해도, 한민족 역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전쟁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순수했고, 생명도 더 존중했다. 또 환경 친화적이었다. 그들의 인간성이 나빠서 전쟁이 자주 벌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전쟁을 많이 했을까? 진짜 이유는 국가 운영의 필요성에 있었다. 어느 시대건 간에 국가는 세금 수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영양분을 안정적으로 섭취해야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듯이, 국가 역시 조세를 안정적으로 거둬야만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백성과 영토의 규모를 항상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것이 적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국가 운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유목국가가 아닌 농업국가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농민과 농토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나라가 굴러갈 수 있었다.
농민 숫자가 그 이하로 내려갈 경우, 옛날 국가가 택할 수 있는 손쉬운 해법은 전쟁을 해서 외국 농민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외국 농민을 자국 농토에 배치해야 했다. 개인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고 국경을 넘을 기회도 없었던 고대에, 외국 농민을 유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벌이는 길뿐이었다.
<논어> 계씨 편에서 공자는, 진정한 군주는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백성들의 삶이 불평등한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옛날 군주들이 백성 숫자가 적은 것을 그만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농민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빈발했던 것이다.
물론 전쟁을 벌이게 되면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게 된다. 이 글에서 옛날 국가들의 전쟁을 경제나 국가 재정적 측면에서 조명한다고 해서, 전쟁의 부정적 측면까지 함께 미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음력으로 의자왕 2년 7월이었다. 양력으론 642년 8월이었다. 집권 2년차인 의자왕은 직접 군복을 입고 신라와의 전쟁에 나서, 불과 한 달 만에 40여 개의 신라 성을 점령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장군 윤충을 시켜 신라 대야성까지 함락했다. 대야성은 지금의 경남 합천과 부분적으로 겹쳤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즉 백제 편에 따르면, 윤충이 대야성을 함락하자 의자왕은 대야성 주민 1천여 명을 사비성 서쪽, 즉 충남 부여 서쪽으로 옮겨놓았다. 이 1천여 명은 주로 농민이었다. 농민 1천여 명을 사비성 서쪽에 배치했다는 것은 그들을 그곳 농토에 배치했다는 뜻이다. 이것으로써, 의자왕이 윤충을 대야성에 보낸 의도가 드러난다. 사비성 서쪽의 노동력 부족을 타개할 목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일자리 증대 위해 전쟁 벌인 군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