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전 지역에 첫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거주민 방 온도가 39도까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임대주택 내에 있는 복지관으로 몇 달간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다. 더위 때문에 구급차에 실려 있는 노인들을 몇 번 봤고, 복지관 관계자가 어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고 말하는 것도 가끔 들었다. 덜컥 떠날 수 있다는 무서움 때문일까 아니면 더위 때문일까. 집보다는 시원한 복지관 사랑방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극단의 날씨를 버티는 방법 중 하나는 여름에 겨울을 생각하고 겨울에 여름을 생각하며 뭘 할지 꿈꾸는 거다. 계절을 바꿀 수 없으니 상상할 수밖에. 날씨를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신이나 영화 촬영장에서나 아주 잠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인간은 지금도 계절을 '바꿀 수' 있다. 기계를 이용한다면 가능했다.
재수학원 속에서의 '뒤바뀐' 계절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스무살에 재수학원에 다니면서였다. 재수학원에 다니던 해는 기록적으로 더운 해라고 신문에서 떠들었지만 난 덥지 않았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던 기억뿐이다. 담요와 두꺼운 후드티를 입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내 기억이 왜곡된 게 아니다. 같은 재수학원을 다녔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가졌다.
재수학원에서 틀어주던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그랬다. 그해 여름, 학원 안은 겨울이었다. 너무 추워서 대다수가 수업시간에 무릎담요를 덮고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얇은 패딩을 입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에어컨 때문에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대고 재채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재수생의 유일한 해방시간인 점심시간에는 옥상 위에 올라가서 햇빛을 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서 죽을 거 같았으니까. 그때가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름의 추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는 '온도조절'. 사육장 같은 공간에 빡빡하게 들어 있는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킬 바람의 세기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학원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높음, 중간, 낮음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뿐이니 섬세한 온도조절은 불가능했다. 여기서 학생들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누군가 온도를 올려놓으면 몇 분 정도 있다가 다시 온도를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반대로 올리면 낮췄다. 온도가 바뀌는 텀이 짧아지면 누군가는 온도 조절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누르며 '이 온도에서 더 이상 건드리지 마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졌다. 자습시간 내내 이런 일이 반복됐다. 추움을 견디질 못한 누군가는 아예 복도나 계단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