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상징은 해발 3350m의 에트나 화산이다.
한성은
별을 보지 않아도 좋아마음먹은 대로 간다면우리는 바다를 건널 거야저 거친 참치들처럼어젯밤 전화기 너머한숨소리처럼꽉 막힌 세상 우리들은 어디쯤에성난 파도 폭풍우가 와도나는 헤엄치네나의 섬을 찾아서
- 전기뱀장어, '거친 참치들' 노랫말 중에서참치들이 본능에 따라 거친 바다를 향하는 것처럼 여행자들은 항상 거친 자연을 동경한다. 하늘을 뒤덮은 빌딩 숲에서 숨막히는 일상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활화산'이라는 한마디에 우리 일행들은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다. 에트나(Etna) 화산 투어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
에트나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3350m)이다. 2013년 대규모 화산활동이 있었고, 지난 화산 활동이 관측되어 시칠리아 전체를 긴장하게 했다. 지금도 연기를 뿜고 있는 이 화산의 분화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전문 가이드를 동행하여 산을 오른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해발 2000m에 있는 공영 주차장(Rifugio Giovanni Sapienza)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여기서부터 트레킹을 해도 되고, 곤돌라를 타고 해발 2500m까지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 일행은 곤돌라 투어까지 하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다.
에트나 화산으로 가는 길이 동부 해변으로 가는 길과 겹쳐서 교통 체증이 심하다며 호스트는 오전 8시 전에는 출발하라고 이야기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조식으로 나온 빵은 어제와 달리 크림도 조금 들어 있어서 일행들을 흥분하게 했다. 느긋하게 먹을 시간이 없어서 모두들 손에 한 개씩 쥐고 차에 올랐다. 오늘도 역시 날씨는 맑았다. 맑다는 말은 곧 온 세상을 태워버릴 듯 뜨겁다는 말과 같다. 출발 전에 어제 긁힌 렌터카 앞범퍼의 상처를 손으로 쓰다듬는데 내 심장이 긁힌 것처럼 아리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숙소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니콜로지(Nicolosi) 시까지 막힘 없이 시원하게 달려왔다. 오르막으로 접어들자 깊은 숲이 우리를 반긴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손에 잡힌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깨끗한 공기가 폐 안에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하염없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무가 사라지고 시커먼 화산재와 화강암으로 뒤덮인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활화산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잠깐씩 보이는 카타니아 시와 시칠리아의 경계는 지금 달리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해 주었다.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올라가는 이 높은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도 유명하지만, 자전거로도 유명한 나라다. 나도 한국에서 한여름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던 적이 있을 만큼 자전거를 좋아한다. 자전거 잡지에서나 보던 고급 브랜드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허벅지가 터질 듯이 페달을 밟으며 에트나 화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제주도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성지 같은 한라산 1100고지를 넘어가는 도로가 있다. 한번 넘어가 볼까 했었는데, 자동차로 넘어가 보고는 혀를 내두르고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비하면 한라산은 초보자 코스였다. 산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완만한 길이 아니라 비탈면을 타고 올라가는 경사진 길이라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처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대단하다며 힘내라고 인사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침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신나게 내려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자전거 때문에 놀라는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참을 운전해서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언덕 아래에 화산 폭발 때 화산재 속에 파묻혀버린 집이 나타났다. 주변에는 이미 이곳을 보기 위해서 대형 버스와 소형 차량이 주차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경을 갔다. 구경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화산 폭발 때문에 집을 잃었을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신기하다며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쉬지 않고 달려와서 잠깐 쉬어가자는 마음도 합해서 핑계를 만들어 차를 세웠다.
화산을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들,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