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느린걸음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버마, 인디아, 티벳, 이렇게 여섯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다른 길>(느린걸음, 2014)을 읽습니다. 글책이 아닌 사진책이지만 나는 이 사진책을 가만히 읽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어떤 모습에 깃든 숨결과 바람과 이야기'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자연이 길러준 것들을 거두어 채취경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약 1만 년 전 농경정착을 시작하기 전까지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수렵채취로 살아왔다. 우리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나무 열매도 산나물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눈부신 태양도 샘물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31쪽)
사진책 <다른 길>을 빚은 박노해 님은 한동안 노동자였고, 한때 시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박노해 님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노래를 하는 사람'입니다. 노동자 시인이라는 길을 지나오면서 '일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탈바꿈합니다. 기계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하루를 쳇바퀴처럼 보내야 하는 나날이 아닌, 날마다 새롭게 삶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짓는 길을 걷는다고 할 만해요.
박노해 님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수많은 사람들한테서도 이와 같은 일을 느끼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이와 같은 모습을 만납니다. 사진책 <다른 길>에 실린 '일하는 사람들'은 고된 몸짓이 아니에요.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이 뒹굴면서 고달파야 하는 살림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