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가 되풀이되며 의기소침해진 내게 삶의 설렘을 줬던 명자나무 꽃은 언제나 설레게 한다.
김현자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야생화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이처럼 특별한 꽃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우울증을 털어내 준 명자나무 꽃이 있고, 친정엄마가 좋아해 엄마 생각과 함께 보곤 하는 자귀나무와 때죽나무, 도라지 등처럼 남다른 꽃과 나무들이 있다.
참깨꽃이 피면 어느 해 유독 참깨농사가 잘 됐다며 기뻐하셨던, 내 손을 끌고 참깨밭으로 데리고 갔던 친정아버지가 떠올라 뭉클해져 바라보기도 한다. 이밖에도 누리장나무, 남산제비꽃, 금붓꽃, 뻐꾹채, 족도리풀, 산딸나무, 처녀치마 등, 이런저런 추억과 사연으로 특별하게 스며들어 있는 꽃들이 꽤 있다.
삼겹살을 입이 불룩불룩하도록 먹을 줄만 알았지 상추를 몰랐다.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마늘과 쌈장을 얹기만 했지 상추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상추는 어엿한 현화식물. 꽃이 피고 열매도 맺는다. 잎차례는 어긋나기. 오래전 우리나라에 정착한 국화과의 한해살이 식물이다. (…) 어느 날 산행을 마친 후의 식사자리. 국과 밥, 찌개가 나오기 전 몇 가지 밑반찬이 놓였다. 특이하게도 후식으로 나올 법한 방울토마토가 한 귀퉁이에 놓였다. 앞에 앉은 이가 방울토마토를 쌈장에 찍어 먹는 게 아닌가. 수박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은 보았지만 그 조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휘둥그레진 나를 보고 하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고추처럼 토마토도 쌈장에 찍어 먹으면 훨씬 맛있어요. 토마토도 가지과 식물이거든요.<내게 꼭 맞는 꽃>(궁리 펴냄)의 저자도 그렇다고 한다. 저자는 식물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 전혀 다른 출판인의 삶을 살면서 야생화와 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 인왕산에 가게 됐단다. 그 길에서 나무와 꽃들을 만나며 비로소 알게 됐단다. 자신이 나무와 꽃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다는 사실을.
이후 꽃과 나무가 눈에 밟혀 산을 찾게 됐다고 한다. 많은 꽃과 나무를 만나고, 그 이름을 알게 되고, 그 생태를 알게 됐다. 그렇게 다섯 해가 됐다. 그동안 특별한 사연과 함께 만난 꽃들을 일간지에 '꽃산 꽃글'이란 제목으로 연재중이란다. 그런데 '굴기'라는 필명으로 쓴단다. '꽃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을 떠올리며 지은 필명 굴기(屈己)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