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정 굴뚝난고정은 난고거사, 남경훈이 처음 지은 후, 현재 자리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정자다. 굴뚝은 아궁이와 굴뚝이 같은 쪽에 있어 특이하고 마루 밑에 숨어 있다.
김정봉
볼 게 많고 들를 데 많은 영덕 영해, 나는 아직도 영해를 헤매고 있다. 영해에서 세 번째 들른 마을은 원구(元邱)마을. 인량마을 앞마을이다. 송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영양남씨, 무안박씨, 대흥박씨, 세 성씨가 시대를 달리해 들어선 집성반촌이다. 종택으로 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안박씨 경수당종택이 있고 대흥백씨 상의당 정자가 전한다.
난고거사, 만취헌, 해안만은... 말맛 나는 난고종택난고종택은 난고(蘭皐) 남경훈(1572-1612)의 종가로 원구마을 마을 숲을 살짝 비켜서 있다. 마을 보다 오래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수십 그루가 마을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숲이다. 종택에는 정침과 만취헌, 사당, 별묘, 난고정이 있다.
정침(正寢)은 임란 때 영해의병장으로 활동한 남경훈을 기려 1624년, 아들 남길(1595-1654)이 지은 것이다. 남경훈의 호는 난고(蘭皐) 혹은 난고거사(蘭皐居士)다. 난향(蘭香) 가득한 언덕에 숨어 벼슬하지 않는 선비라는 뜻이다. 그는 호(號)처럼 살았다.
의병활동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집 뒤 동산에 있는 연못가에 난고정을 지었다. 35세, 1606년 일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옥고를 치른 후, 병을 얻어 41세에 벼락죽음을 맞이하였으니, 35세라 해도 그에게는 그리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현재 남아있는 난고정은 이름뿐, 후손들이 그를 생각하며 1868년에 복원하여 새로 세운 것이다. 난고정에 걸려있는 척암 김도화(1825-1912)가 쓴 <난고정기>에 이런 얘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