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7일 현대차비정규직투쟁 공동대책위원회 <노조탈퇴강요하는 현대차 부당노동행위 고소 기자회견> 현장
윤지선
손배가압류 대상자에게 '권리'는 없다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손배소는 노동자들의 투쟁 목적인 '정당한 권리'도, 사용자가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도 효과적으로 지워버린다. 민주노조 보장, 정규직 전환, 원직복직, 노동환경개선, 임금 등 처우개선, 차별반대 등 어떤 목적도 손배소가 제기되는 순간 '포기'대상이 된다.
수십억 손배폭탄이 주는 경제적 압박 앞에서 진행되는 사측의 회유는 겉으로는 노동자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같지만, 손해배상 대상이 된 비정규직노동자는 정당하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법적권리마저 '선택'의 범위에 넣도록 강요받는다. 사실상 '포기'를 강요한다. 이 '선택'에는 이미 '노동권'은 물론 '인권'마저 없다. 손배소가 21세기 야만인 이유다.
노동자는 어떤 '선택'을 하던 삶은 송두리째 뒤흔들린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노동조합을 포기하는 것은 그동안 지켜오고 주장해왔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한다. 조건이 '손배소'이기에 어떤 이는 경제적 압박에 못이겨 스스로 '권리'를 포기했다는 데 대한 자책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부 신규채용된 조합원은 "그동안 지지해주셔서 고맙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끝까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선택하는 것도 고된 선택이다. 말 그대로 수백억 원의 배상액을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불법파견임을 인정받고도 정규직으로 전환을 정당히 보장받지 못한 현실에서 갚을 수도 없는 수십억의 손배청구 금액은 '억울함'과 '절망'이 된다.
손배소가 노동3권을 침해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례는 다른 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측이 요구하는 손배소 취하의 조건은 '노동조합탈퇴'는 기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해고무효소송이나 임금체불소송 등이 걸려있는 노동현장은 여지없이 소취하를 주고받는 방식의 회유와 협박을 받는다. 심각한 곳은 '퇴사'를 요구한다.
"시간도 힘없는 노동자의 편이 아닙니다"생탁막걸리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개선,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2년이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1억2500만 원의 손배소를 청구했다. 그러나 민주노조에 소속된 노동자 대부분 정년에 가깝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간싸움이 되어버렸다. 촉탁계약직 노동자들은 계약기간과 정년시기를 넘겼고, 복직 대상자는 이제 3명만이 남았다.
비정규직노동자나 해고노동자들의 경우 고용승계, 복직을 요구하는 기간은 사실상 수입이 없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버텨내기 어렵다. 더구나 손배소는 청구금액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라도 일단 소가 제기되면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가압류의 경우 공탁금만 걸면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바로 집행된다. 최근엔 전월세임차보증금까지 가압류된 사례도 있었다.
반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은 몇 백만 원에서 많아봐야 2천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사용자보다 가진 게 없고, 손배가압류로 경제적 타격까지 입은 노동자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최대한 소장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가장 최근 손배소 소장을 받게 된 동양시멘트지부 노동자들은 임시방편만 늘었다고 헛웃음을 짓는다. 회사는 위장도급 판정을 받고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금만 내며 시간을 끌고 있다.
"기온이 30도를 넘고 요즘처럼 더운 날에도 창문을 못 열어요. 창문이 조금만 열려있으면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송장을 창문 틈새로 던져 넣고 가요. 송장을 최대한 늦게 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이것도 재판을 조금이라도 미뤄보려는 임시방편이죠. 어쩌다 집에 있던 가족이 모르고 받기라도 한 집은 서로 미안해하죠. 미안할 일은 아닌데." 손잡고 노동현장간담회 기록 중.2016.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