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 ( 여성, 환경, 평화 운동가)
참여사회
- 너나 할 것 없이 힐링의 필요성을 외치는 요즘이다. 선생의 '살림이스트' 접근법은 개인의 치유와 사회의 변화를 함께 고민한다는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한국어 중 가장 글로벌한 말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살림'이다. 살림살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자신과 타인, 지구를 살리는 일도 살림이 된다. 한국은 상처가 많은 곳이다. 돌아보고 돌봐야 할 것들이 많다. 내 안의 신성을 돌보고 내 이웃, 사회, 지구 전체 등 주변의 생명체들을 돌보는 게 바로 살림이다. 에코페미니즘이 지구와 사람을 살리는 걸 지향한다면, 그 뜻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장 좋은 한국말이 바로 '살림'인 것이다. 공격과 충돌이 아니라, 상생과 대화를 믿는 게 바로 살림이스트다. 죽음과 폭력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는 살림의 에너지로 만들어내야 한다."
- 방학 때마다 한국에 오면 '살림이스트 워크샵'을 진행하신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유니언신학대학에서 신학자로 일하지만, 학교 측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독일에 가서 '홀로트로픽 숨 작업(Holotropic Breathwork)'이라는 심층심리 프로그램을 공부하거나 이슬람 17개국 순례를 떠나 무슬림 여성을 인터뷰하거나 하는 일을 계속했다.
살림의 방법 중 요즘은 심층심리 워크숍을 통해 우리 무의식의 깊은 트라우마를 드러내 보는 일을 하고 있다. 고함과 통곡,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등 심층심리 치유 워크숍 도중 일제 강점기, 6.25, 4.3때의 제주도 등 온갖 근대사의 귀신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라. 집단무의식 속에서 우리의 업보로 남아 있는 상처들을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 우리의 무의식, 우리의 내면을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는 깨달음이다.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 잎사귀, 수많은 동물들, 바닷가의 모래알, 흔하디흔한 눈의 결정체도 다 다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리, 그 유니크함은 인생의 선물이다. 예수는 외경 도마복음서에서 '만약 네가 네 안의 그것을 내어놓으면 그것이 너를 구원할 것이요, 그것을 내어놓지 못하면 그것이 너를 파괴하리라'고 말했다. 이 짧은 인생에서 표현해야 할 유일무이한 그것을 우리 모두 각자 가지고 나온다. 힌두교에서는 그걸 '신적인 불꽃',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 이슬람에서는 '할리페' 즉 "이 세상에 온 존재의 이유"라고 부른다. 모든 지知의 전통, 종교의 전통에서 그것을 이야기한다. 제일 좋은 사회는 내 안의 그것을 아무 제약 없이 꺼낼 수 있는 사회다."
- 참여연대 워크숍에서 '영성과 혁명'을 얘기한다니, 아주 신선했다. 하지만 그 둘이 끝내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 수도 있지 않나 싶은데?"'나의 살림'은 '사회의 살림'과 떼놓을 수 없다. 심층심리, 명상, 수행, 자기성찰 없이 사회운동을 하면 결국 바싹 말라버린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좀 촉촉하게 할 수 없을까? (웃음) 예수의 힘은 다른 사람들의 힘과 달랐다. 폭력적인 힘, 남을 컨트롤하는 파워 오버(power over)가 아니라 남을 감동시키는 힘이었다. 가장 깊은 신성, 생명력과 연결된 힘이었다. 최근에 펴낸 책 <연약함의 힘>에 썼던 게 바로 그런 힘이다. 제일 중요한 생명의 힘을 접하며 어부가 그물을 놓고 그의 뒤를 쫓았다.
'성령이 오시면 너희가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자기 걸 끄집어내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대신 예수에게 기도만 하고 있다. 혁명과 영성은 개인변화, 사회변화의 두 수레바퀴이다. 불교에서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수행이라 하듯, 둘이 같이 가야 사건이 일어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그런다. '참여연대가 영성을 얘기하네? 야, 참 많이 왔네, 참여연대?' 정말 좋은 징후 아닌가. 나쁜 놈들이 말아먹고 있는데 침묵하는 건 말도 못할 업보다. 정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영적인 행동이다. 내가 말하는 게 업보를 만들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왕따 당하는 걸 수도, 감옥 가는 걸 수도, 종북좌파 딱지를 받게 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 업보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도 입 딱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다."
- 연약함의 힘을, 사회운동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떡하면 좀 더 촉촉해질 수 있다는 건가?"부정의를 향해 싸우다 보면 그들과 똑같이 닮아가기 십상이다. 똑같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일단 멈추고, 깊이 숨 쉬어야 한다. 내 존재의 밑바닥까지 가는 깊은숨을. 그다음에 깊이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사회운동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괴물적 판단과 괴물적 감성에 따른 운동을 피해갈 수 있다.
체제에서 자진해 뛰어내린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그들의 생기, 그들의 아름다움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연약함의 힘은 결코 연약하지 않다. 생명의 부드러운 속살에 닿아 있어 연약할 뿐, 이 힘의 소유자는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쫄지 않고, 힘없는 사람 앞에서 우쭐대거나 갑질하지 않는다.
신학, 심리학을 접목한 영적인 가이드(spiritual direction)를 하면서 늘 얘기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나는 스스로에게 진실한가(Am I true to myself)?'를 물어야 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이 진정한 자아로부터 반응하는 건지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그게 정말 내 목소리, 내 진실, 내 안의 그것이라면 그걸 드러내야 한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고, 사랑을 사랑이라 말해야 한다. 셋째는 책임지기다. 그게 억압이든 뭐든 다 받아들이고 책임져라. 왜냐하면 표현하지 않으면 이미 내가 나 자신을 파괴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