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로 향하는 길 팜플로나 도착 3km 전 이때부터 도시에 진입하게 된다
정효정
툴툴거리면서도 피터는 좀 기뻐보였다. 먼저 출발하려다가 피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신은 어떤 존재인가요?""간단해. 신은 사랑이지. (God is love) " 의외로 뻔한 대답에 김이 빠졌다. 그런데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 신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신이 아냐. 일생을 거쳐서 내가 이거 하나 깨달았지. 내가 젊을 때 저지른 수많은 실수는 그 착각에서 비롯됐거든."
신처럼 숭배하던 사랑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절망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뉴스에서 본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여자친구를 죽이고 시신을 암매장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했다"며 흐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의 사랑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잘못된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자식사랑'이나 '나라사랑' 등 '사랑'이란 단어가 붙은 채 행해지는 많은 행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서 '사랑'은 자주 자신의 욕망을 감추기 위한 당의정으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피터의 말대로 '신은 사랑이지만, 모든 사랑이 신인 것은 아니다.' 의외로 간단한 진리인데, 그동안 그 단어의 위용에 가려 못 보고 지나쳤던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인생을 걸쳐 깨달았다는 진리를 나누어 준 피터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길을 떠났다. 이 길에서 스쳐지나가는 모든 말들은 내게 인생의 의미가 되어 새겨지고 있었다.
"오해하지 마, 신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신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