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 스님을 다룬 JTBC 뉴스
JTBC
"현각이 제기한 조계종의 문제는 유교적 관습, 남녀·국적 차별, 형식주의, 기복주의, 스님과 신도의 차등, 외국 승려는 장식품이라는 총 6가지다. 현각의 비판은 외국 승려가 얼마나 이기적인 시각에서 한국 문화를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현 스님을 비롯한 '반론'의 중심축은 현각 스님이 지적한 부분들, 가령 유교적 관습 같은 부분은 "한국 불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문화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전제로 깔고 이해해야 하는 부분"인데, "(한국에) 25년이나 살고도 우리 전통문화를 존중하지도 문화적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자기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현각 스님에게 직접 칼을 겨눴다.
흐름은 두 갈래로 극명하게 나뉜다. '자성론'과 '현각에 대한 비판론'. 이 극명한 대비가 주는 안타까움은 현각 스님이 던지 화두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소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그걸 바라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은 미국식 사고, 백인 우월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사대주의나 학벌주의가 유교문화라는 것은 다 알려진 이야기고요. 어떻게 보면 거기서 가장 큰 혜택을 본 분입니다.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굉장히 불교계에서 높은 단계까지 순식간에 올라가신 분"이라는 비판은 방향이 빗나가도 한참 엇나갔다.
물론 현각 스님의 비판이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어쩌면 현각 스님이라는 비판의 주체도 그러할지 모른다. 그가 '미국인'이라는 국적과 '하버드'라는 학벌의 혜택을 본 불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혜택을 준 것은 결국 '한국불교'가 아닌가. 오히려 비판은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현각'만을 바라본다는 건 달을 보지 못하고 그걸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 불교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현각이 던진 '화두'이지 '현각'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현각 스님이 던진 화두는 단지 한국 불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한국 불교의 억울한 듯한 변명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항의일 것이다. 한국 사회가 잉태한 것이 한국 불교이거늘, 어찌 그것이 불교에만 국한된 문제이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반성의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쯤에서 1+1 할인행사를 해보자. 한국 불교 만큼보다 심각한 건 한국 개신교가 아닐까. 이름만 대도 그 '부패'와 '비리'가 떠오르는 대형 교회의 목사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라이즈업이라는 개신교계 청소년 교통선교단체의 목사는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관계를 맺은 혐의에 대해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종교의 타락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처참한 몰골을 한 종교가 자성으로 접어들기 위해선 외부의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 지경까지 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몰락이 '푸른 눈의 한국인' 박노자에 의해 드러났던 것처럼, 대한민국 종교의 타락은 '푸른 눈의 선각자' 현각 스님의 등장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 이 뜨거운 바통을 이어받지 않고 무엇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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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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