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ECC
pixabay
6. 대학의 이러한 본질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추구되어야 할 가치는 "학문적 수월성(academic excellence)"이다. 대학에서는 더 많이 연구하고, 더 훌륭한 연구 업적을 남긴 학자가 존중받으며, 나이나 근속연수가 아니라 연구 업적에 의해 학자로서 교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 역시 그들을 사회에 진출해 활약할 인물이자 학문 후속 세대로서 교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연구한 교수가 더 잘 가르친다"는 법칙이 통용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 내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7.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의 의사결정은 민주적이지 않다.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로 나뉘고,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로 나뉘며, 교수, 직원, 학생으로 나뉜다. 대학의 본질은 학문적 수월성의 추구이기에, 의사결정 구조 역시 그러한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학문적 수월성의 추구라는 목표에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원칙은 다소간 유보된다. 물론 학생회로 대표되는 학생자치, 교수회로 대표되는 교수들 간 협의체제, 직원노조로 대표되는 대학 구성원으로서 교직원, 그리고 대학 구성원으로서 각 이들 집단의 대표와 보직교수 및 재단이 참여하는 대학평의회 등 개별 집단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과연 제대로 운영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8. 이번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추진을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 셈이다. 당면한 갈등은 해결되었지만, 대학의 본질과 그 본질과 연결되는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논의는 유보된 상태다. 과연 한국 대학은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학문 공동체이자 교육 공동체, 그리고 개방성을 지닌 집단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는가?
만약 추구한다면 그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육 정책과 예산 지원을 결정하는 교육부에 의해 대학 교육이 좌지우지되는 사태는 언제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9. 수백 년이 넘은 미국이나 유럽의 근대적 대학 교육에 비해, 한국의 근대적 대학 교육은 그 역사가 짧다. 가장 역사가 오랜 대학이 아직 200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길지만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짧은 이 한국 고등 교육의 역사에서,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 정원 감축 등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지금이 대학 교육의 본질과 대학의 바람직한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최적의 시점이다.
이 논의가 선행되어야 대학의 구조개혁도, 대학 감축도,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선행되는 대학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추진 철회는 끝이 아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논의는 끝났지만, 한국 사회의 논의는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