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표지
피플파워
"친일파들이 무슨 짓을 했어요?""독립운동가들이 하신 일이 뭐죠?"중·고등학생들에게 막상 이런 질문을 '당하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친일파들은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막연한 말로, 독립운동가들은 안중근·윤봉길 의거·김구 선생·3.1운동 등 몇 명을 간신히 입에 올릴 따름이다. 하긴 배운 게 그것 뿐이니 어쩌겠는가. 교과서에서도 몇몇 사례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뿐이고 심지어 학교 수업에서도 일제강점기 후반부터는 '진도'에 밀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뭔가 막연히 '느낌'으로 머리가 굵어지는 아이들에게 궁색한 답을 하다가 얼버무리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아이들도 훗날 자녀에게 또 궁색한 답을 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교과서에서 해줘야 한다. 교과서에서 당시 시대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뒤 양쪽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비교·대조하면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는 책임을 방기했으며, 그나마 일부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쓴 책들은 정작 중요한 내용 -특히 사회주의와 관련된- 것들은 빼 버리고 이야기식으로 억지 짜맞추기를 하거나 미화한 것이 많다.
결국 제대로된 답을 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저자 선안나씨는 동화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장력으로 청소년들의 이해를 돕고,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14사람을 선정하고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묶었다.
[명문가]이회영vs이근택[사업가]안희제vs김갑순[여성]남자현vs배정자[문학]이육사vs현영섭[언론]안재홍vs방응모[개화여성]김마리아vs김활란[군인]장준하vs백선엽명단 중 앞에 나오는 사람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사람이고, 뒤에 나오는 사람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이다. 특히 이 책은 청소년용 도서 치고는 대담하게도 장준하, 방응모, 김활란, 백선엽 등 민감한 사람까지도 함께 다뤘다. 예를 들면 백선엽에 대해서 설명할 때는 그가 일본에서 발간한 자서전을 언급하기도 한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간토토벌대로)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들이 역으로 게릴라가 되어 싸웠으면 독립이 빨라졌으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본문 297쪽. 현존하는 '권력'인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소개했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1면 조선일보 상단에 일왕 부처의 사진과 요란한 찬양 기사도 실렸습니다. 일왕 생일을 기념하는 명치절에는 축하행사를 소개하고 찬양 사설을 싣는 한편 일본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서사'를 일본어로 게재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본문 206쪽. 독립운동을 덮어 놓고 미화하기 보다는 사실을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임시정부는 어려운 형편에서 파벌싸움이 극심했습니다. 장준하와 청년들은 과격한 저항을 하며 격렬히 문제제기를 했지만 서로 갈등만 깊어질 뿐이었습니다. 결국 학도병 출신 청년들은 삼십 리 정도 떨어진 토교라는 곳으로 옮겨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본문 275쪽. "소련으로 넘어간 독립군 부대는 자유시 참변으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소련의 지지를 받는 독립군과 소련군이, 소련의 지시를 거부하는 독립군을 공격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만주로 돌아온 독립군들도 여러 갈래로 흩어져 서로 다른 분파가 전투를 벌이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본문 103쪽. 이처럼 이 책은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또한 일제시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주인공들의 행적도 충실히 다뤘다. 따라서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양쪽의 인물을 비교·대조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살짝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겪었다.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은 자신의 실적을 쌓고 해방 이후까지 화려한 삶을 살았다. 이 두 부류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사실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에서 조차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삶이 갈리는 것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책 저자는 '독립운동가들이 정의다'라고 하고 싶었겠지만 '공무원이 꿈'인 청소년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독립운동가들의 엄청난 고난을 보면서 혹여 청소년들이 염세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낫다고 생각할까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겪은 '냉정한 역사적 현실'이 그것인 것을.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
선안나 지음,
피플파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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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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