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산책로에서 한참 동안 일몰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영섭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며 일만 열심히 하면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시대의 종말이 옴에 따라 '힘들어도 참아라'는 가르침 역시 그 수명을 다했다. 이제 힘들면 무작정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를 판단하고 현명한 대응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몇몇 선택 받은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매일 매일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고, 이를 억지로 풀어내고(대부분 술이다), 다시 또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패턴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내 가족을 위한 삶이라고 애써 자위하곤 한다.
애초에 그 힘든 이유를 직시하지 않고 덮어둔 채 알코올로 신경을 마비시킨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서조항이 붙는다. 이 힘든 삶의 패턴이 타의에 의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만 꾹 참고 견디면 회사에서는 절대 해고되지 않는다는, 직장인이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현 구조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9급 공무원 시험에 현직 변호사가 응시하는 촌극이 이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을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잘 지내고 있냐고. 이 질문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절망적이지만 입에 풀칠은 하게 해주는 도시생활의 끈을 놓았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생기는 지에 대한 궁금함이 담겨있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현실적인 고민과 여기서 비롯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도시에서나 제주에서나 마찬가지다. 다만 서울에서보다 웃을 일이 많아졌다는 점과 산책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문득문득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충만감을 느끼곤 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래서 나는 제주 이주 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한결 같은 답변을 해주곤 한다.
"잡고 있는 그 끈이 놓아도 되는 것인지, 꽉 잡고 있어야 하는 끈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