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때 가출했잖아, 짜장면집 간다고"

20년 만에 만난 친구,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등록 2016.08.03 12:33수정 2016.08.0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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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일까? 요즘 반갑고 즐거운 일이 계속됩니다. 그동안 세상과 단절되었을까? 아님, 딴 세계에 살았을까? 아무튼 잊고 살았던 과거와 소통이라 더 흥미롭습니다. 50이 넘으니 차츰 주위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자연의 이치와 삶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유이지 싶네요. 한꺼번에 터진, 세월을 거스른 만남이 반가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내 어릴 적 친구였습니다!

 4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월요일 전교생 아침 조회 사진입니다. 이런 때가 있었다니...
4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월요일 전교생 아침 조회 사진입니다. 이런 때가 있었다니...임현철

"OO이다. 잘 사냐?"
"엉. 반갑다. 너도 별 일 없지?"
"한 번 보자."
"언제 볼까?"
"지금 보자. 너 집이 소호동이라 했지.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래? 그러자."

초등학교 깨복쟁이 친구는 연락하자마자 볼 것을 청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용기 내 연락했답니다. 그리웠다나 어쨌다나. 고마울 일입니다. 그는 40여 년 전 초등시절, 앳된 얼굴에 장난기가 철철 넘쳤습니다. 그가 호프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마주 앉았습니다.

뉘라서 세월의 흐름을 막을쏘냐. 20년 만에 본 그는 변해 있었습니다. 팔뚝엔 근육이 넘쳤습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습니다. 얼굴에는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내 어릴 적 친구였습니다. 그가 핸드폰을 뒤적였습니다. 원하는 걸 찾았을까. 폰을 내밀었습니다. 빛바랜 사진이 많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어디서 다 모아놨대."
"한 번씩 보려고 앨범 등에서 찾았어. 이게 삶의 활력이더라고."


40여 년 전 사진은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선사했습니다. 짧지만 유쾌한 여행이었습니다. 순박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스스로를 꺼냈습니다.

"넌 모를 거야, 나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했잖아!"


 같은 반 친구들과 전체 졸업사진입니다. 꿈이 참 많았었는데...
같은 반 친구들과 전체 졸업사진입니다. 꿈이 참 많았었는데... 임현철

"넌 모를 거야. 나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했잖아. 그것도 안성으로.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이 한창 유행할 때였어. 김홍신 소설에 나온 짜장면 집 간다고 나와 15일 간이나 짜장면 배달했어."

헐. 가출이라니…. 중2. 아니 정중하게 중학교 2학년이라 해야겠네요. 중학교 2학년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방지축, 기고만장이나 봅니다. 하여튼, 가출이라곤 꿈도 못 꿨는데, 간이 부은 놈입니다. 근데, 김홍신 소설이 친구 입에서 뛰어나올 줄이야! 하기야, 당시 인간시장 영웅담 대단했지요.

"가출하고 13일째 되던 날. 잘 있다고, 걱정 말라고, 편지 써서 주소 없이 집에 보냈어. 그런데 작은 누나가 편지를 들고 안성으로 찾아온 거라. 우체국 소인이 잘못 찍혀 'ㅇ'하고 'ㅅ'만 보였는데, 그것만으로도 귀신같이 알아서 찾아왔더라고. 그 길로 잡혀 집에 내려왔지."

피붙이는 피붙이인가 봅니다. 우체국 소인 'ㅇ'과 'ㅅ'만 보고, 어찌 '안성'을 찍었을까? 대단한 수사기법입니다. 그만큼 동생 찾으려는 마음이 강했나 봅니다. 그는 묻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스스로 이야기 사이사이를 넘나들었습니다.

왜 500원 훔쳤냐고? 영화 두 편에 500원이었거든

 졸업 앨범 위에 붙은 급훈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공정신 투철한 어린이라니...
졸업 앨범 위에 붙은 급훈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공정신 투철한 어린이라니...임현철

"왜 도망쳤냐면. 그때 큰형이 사업할 때라. 가게 보다가 500원을 꼼쳤어. 큰 형이 그걸 어찌 알았는지, 알고는 째깐한 놈이 간댕이가 부었다고 몸에서 먼지가 풀풀 나도록 죽도록 패더라고. 그 길로 안성으로 튀었지."

한 때 추억이지만 보통 훔친 이야기 잘 안합니다. 근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이야기를 재미지게 풀어 헤쳤습니다.

"왜 500원을 훔쳤냐고? 그때 한참 인기였던 성룡 영화 2편 볼라고. 고게 두 편에 500원이었거든. 영화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500원을 삥땅쳤겠어. 한참 맞는데 옆에서 미용실 하던 작은 누나가 말렸어. 그때 우연히 누나 지갑을 봤는데 돈이 수북하더라고. 맞은 게 억울해서 그 길로 누나 지갑에서 3만 원 들고 튀었지."

김홍신 소설 '인간시장'은 뒷전. 범생이였던 제겐 이야기 속 친구가 영웅이었습니다. 한 번쯤 튀어볼 생각은 있었으나 용기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아쉬움. 답답한 현실에서 속 시원한 영웅담이 필요하시다면 김홍신 님의 '인간시장' 외에 고(故) 변재환 님의 장편 의협소설 '비상도'를 추천합니다.

암튼, 얼굴만 남은 사진 속 친구들은 다들 멋있었습니다. 친구는 한바탕 무용담 후 술이 취한다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절제된 행동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보고 싶었던 친구, 얼굴 보니 좋다."

 운동회 때 마스게임입니다. 연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벌도 많이 받았지요. 이런 걸 왜 했을꼬?
운동회 때 마스게임입니다. 연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벌도 많이 받았지요. 이런 걸 왜 했을꼬?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초등학교 #친구 #운동회 #가출 #변재환의 비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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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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