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담과 마을 고택 마을담은 흙으로 쌓은 토담, 마을 담이 끈이 되어 고택들을 잇고 있다.
김정봉
영해장터 코앞에 있는 괴시마을에도 동학혁명에 관여하거나 항일운동을 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동학혁명의 사후관리를 맡아본 남유진, 신돌석 의병장을 후원하고 영해3.18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남계병,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순국한 남진두와 이밖에 남효진, 남응하까지 모두 영양남씨 괴시파 후손들이다.
괴시마을에 맨 처음 터 잡은 영양남씨는 남두원(1610-1674). 그의 아들 남붕익(1641-1687)은 영양남씨 괴시파종택을 지었다. 종택을 중심으로 주변에 자손집들이 가득하다. 종택, 대남댁, 괴정, 해촌고택, 구계댁, 물소와고택, 경주댁, 주곡댁, 영감댁, 백회재고택, 천전댁, 사곡댁까지 얽힌 타래처럼 고택들이 얽혀 있다.
물소와고택, 말맛이 재미있다. 물소와(勿小窩)는 작은 집(小窩)으로 여기지 말라(勿)는 의미인가?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니, 작은 것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의미일 게다. 일찍이 한나라 소열제(유비)는 '선은 작다고(小) 행하지 않으면 안 되고(勿) 악은 작더라도(小) 행하면 안 된다(勿)'라고 했다. 물소와에는 이런 철학이 담겨 있다. 작은 선이라도 자주하면 적선이요, 작은 악을 반복해서 하면 적악이 되니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