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열하 피서산장 담백경성전.
김기동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 열하 피서산장에 가다1793년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는 11개월 걸려 중국 열하를 방문해 청나라 건륭제 84세 생일 축하연에 참석합니다. 14년 전 조선국 사은사가 청나라 건륭제를 만났던 장소인 피서산장 담백경성전(澹泊敬诚殿)에서 영국 매카트니는 건륭제를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가 청나라 건륭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했는지는 영국과 중국의 기록이 다릅니다.
매카트니가 남긴 기록에는 청나라 황제에게 한쪽 무릎만 꿇고 어깨를 숙였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에게만 두 무릎을 꿇는 영국인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중국 '고종순황제(건륭제)본기'와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 수행원이 남긴 일기에는 매카트니가 건륭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8세기 말 영국 매카트니가 청나라를 방문한 실제 목적은, 청나라 홍차 수입으로 무역수지 적자에 빠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청나라 3억 명 소비자에게 영국 모직물과 면직물을 팔 수 있도록 무역규제를 완화하고 관세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려 했지요.
그래서 이런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영국 사절단은 산업혁명 최신 기술로 제작된 총, 대포, 기선 모형, 천문측정기, 망원경, 철광석 융해기 등을 건륭제에게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매카트니는 생일축하연에서 건륭제를 만난 이후, 더는 건륭제와 이야기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외교적 성과 없이 영국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대신 돌아올 때는 바다를 통해 왔지만, 갈 때는 내륙 운하를 이용해 청나라 내륙 지도를 완성해 영국에 가져갑니다.
청나라 건륭제는 이때 나이가 84세로 늙었고, 또 실재 국가운영은 중국 역사 최고 부패관리인 '화신'이 담당하고 있어서, 매카트니가 가져온 산업혁명 과학기기 선물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북경 원명원에 중국 골동품과 같이 보관됩니다.
청나라 건륭제는 세계가 산업혁명으로 변하고 있고, 앞으로 영국이 청나라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지요. 아니면 수구세력인 '화신'이 건륭제의 눈을 가렸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1793년부터 북경 원명원 정원에 보관되던 매카트니 선물은 1860년 영국이 북경 원명원을 침탈할 때 영국군이 다시 본국으로 가져갑니다.
▲중국 열하 피서산장에서 임종하는 함풍제.
김기동
청나라 건륭제 증손자 함풍제, 열하 피서산장으로 피난 가다1860년 영국은 청나라에 더 좋은 조건으로 마약 아편을 팔기 위해, 프랑스와 함께 2차 아편전쟁(아래 박스 기사 참고)을 일으켜 청나라를 침략합니다. 이미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청나라는 영국의 침략에 적절히 대응할 힘이 없었습니다.
아편전쟁은 무엇? |
1700년대 후반부터 영국은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청나라에 마약 아편을 불법적으로 수출한다. 1839년 청나라는 흠차 대신 임칙서를 무역항구 광동에 파견하여 영국 상인이 보관하던 마약 아편 2만 상자를 몰수해 폐기한다. 1840년 영국은 이를 트집 삼아 청나라를 침략, 남경조약을 체결하여 공공연하게 마약 아편을 중국에 팔 수 있게 되었다. |
1840년 1차 아편전쟁은 전쟁터가 중국 남부로 한정됐지만, 이번에는 영국군이 청나라 수도 북경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나라 건륭제 증손자인 함풍제는 황급히 열하 피서산장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1793년 증조할아버지 건륭제는 열하 피서산장에서 영국 사절단 매카트니에게 생일 축하를 받았지만, 67년이 지난 1860년 증손자 함풍제는 영국 군인에 쫓겨 열하 피서산장으로 도망을 간 거지요. 함풍제는 이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이듬해 피서산장에서 31세 나이로 죽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