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백남준의 방'에는 다양한 영상도 소개된다. 백남준, 멜방이 흘러내린 채 미국의 역대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표정이다. 여기 백남준 모습에서도 재미와 장난기로 심각하지 않은 예술을 하려 한 플럭서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김형순
우선 이 운동 멤버로는 앞에서 언급한 존 케이지와 요셉 보이스가 있다. 존 케이지는 1956년부터 1961년까지 뉴욕 '뉴스쿨'에서 현대음악을 가르쳤는데 그 강의를 들은 음악가 '조지 브레히트', '라 몬테 영' 그리고 '딕 히긴스' 등도 다 이 단체에 가입했다.
이밖에도 퍼포먼스의 창시자 '앨런 카프로우'를 비롯해, 비트세대 시인 '긴즈버그', 뮤지션 '벤 패터슨',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 프랑스작가 '보티에', 여성 퍼포머 '앨리슨 놀즈', 독일시인 '토마스 슈미트', 데콜라주(décollage)작가 '볼프 포스텔', 영화감독 '조나스 메카스' 이번에 서울에 온 덴마크 출신의 '에릭 앤서슨' 등등이 있다.
이 단체는 동서의 경계 없는 국제주의 원칙을 채택했기에 한국의 '백남준'을 물론 일본의 '오노 요쿄', '구보타 시게코', '미에코 시오미' 등 아시아 작가도 참여하게 된다.
특히 그 과격성에서 존 레논 부인 오노 요코와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요코는 1964년 도쿄에서 자신이 입은 옷을 가위로 조금씩 잘라내게 하는 '자르기(cut piece)'를 선보였고, 시게코는 1965년 뉴욕에서 백남준의 기획으로 여성의 성기에 붓을 꽂아 그림을 그린다는 '버자이너 페인팅'을 선보였다.
위 사진에서 보듯 이 운동은 미디어와 미디어를 연결하는 '인터미디어'(intermedia)를 중시했고 소통과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방식을 취했다. 붓 대신에 피아노, TV 같은 전자매체도 도입했고, 기존가치의 해체와 파괴를 통해 새로운 예술의 물꼬를 텄다.
백남준은 1992년 12월 19일 뉴욕에서 플럭서스 운동에 이렇게 평가했다.
"플럭서스는 서방에서는 문화혁명을, 동구에서는 정치혁명(회원 중 '하벨'은 체코대통령, '란즈베르기스'는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되다)의 공을 세웠다. 우리는 약소국과 강대국 작가들이 작업을 하면서도 내분이 없었던 유일한 예술운동이다. 왜냐면 위계질서 묶이지 않고 글로벌한 우애를 꽃피웠기에 그리고 우린 무궁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질긴 꽃이었다" '크라잉 스페이스(추모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