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신작 시집 <봄바람, 은여우>
도서출판b
이은봉(63)도 그 시대와 무관할 수 없었다. 날을 세운 풍자와 거친 시어가 그의 작품 속에서 꿈틀거렸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출간된 첫 시집 <좋은 세상>이 그랬다.
붉은 피와 푸른 청춘이 시집 속에서 갈등했고, 불의와의 반목 끝에선 불꽃이 튀었다. 시집의 제목은 "좋은 세상은 아직 멀었다"는 역설이었다. 그때 이 시인의 나이 서른 셋이었다.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엇이 너를 키우니> <첫눈 아침> <걸레옷을 입은 구름> 등 여러 권의 시집이 이은봉의 머리를 거쳐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대학교수가 돼 학생들을 가르쳤고, <실사구시의 시학> <시와 생태적 상상력> <화두 또는 호기심> 등을 통해 문학평론도 병행했다.
바로 그 이은봉이 새로운 시집을 들고 독자들과의 만남을 청했다. 이름하여 <봄바람, 은여우>(도서출판b). 기자가 만난 이번 시집은 갑년을 넘긴 노시인이 부르는 '이순(耳順)의 노래'처럼 들린다. 여기서 노시인이란 '늙은 시인'이란 의미가 아니다. 아래와 같은 시에서 보이는 '한소식 한 승려'와 같은 목소리를 들어보라.
봄바람은 둑길가의 민들레 씨앗털이다등 떠밀지 않아도 절로 날개를 파닥거린다민들레 씨앗털은 지금 촉촉이 젖고 있다초록강아지들 흥건히 껴안고 있다- 위의 책 중 '봄바람' 일부 인용. 봄에 부는 바람을 '파닥이는 날개'로, '초록강아지'로 표현한 감각을 보자면, 이은봉은 아직 젊다. 기자가 '노시인'이라 칭한 것은 사물의 본질과 세계의 운행법칙을 읽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어의 세련됨과 풍부함을 이야기한 것이다.
사람 좋은 웃음 뒤에 숨긴 서늘한 시심(詩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