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이것은 대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ebs 다큐프라임
둘째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이 사회는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이다. 대입과 취업, 결혼과 내 집 마련이라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 과제 속에서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인생 과제는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살기 위한' 발버둥이다.
현재 한국에서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 수 없고, 모두가 노예일지라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기나긴 경쟁 레이스를 달려야 한다. 그 레이스에서 낙오된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낙인과 '무능력자' 낙인 속에 살아야 한다. 단 한 번의 딴짓으로 인생이 망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그저 마음 한 켠에 숨길 뿐이다.
회사 내에서도 새로운 걸 시도하기는 어렵다. 권위주의적 계급 체계 속에서 젊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회사는 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수익성 검증을 요구하고 효율을 요구한다. 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 최소한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안전한 길이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아무도 그런 곳에 투자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회사와 관료는 위험하고 혁신적인 것이 아니라 늘 해왔던 변변찮은 것을 유지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바쁘다.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새로운 시도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켓몬 세계를 만든 타지리 사토시는 공부가 아니라 곤충채집과 게임에 열을 올렸던 학생이었다. 나중에는 프리랜서 기자를 하며 2년 간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포켓몬스터'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곤충채집과 게임에 열을 올리는 학생을 상상할 수는 있다. 다만 그런 학생들은 결국 흔히 말하는 '지잡대'에 가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도 낮은 임금과 과노동 속에서 살아남기에도 버겁다. 마음 속에 품은 것이 있더라도 주변의 만류와 윽박지름, 무시 속에서 '쓸데 없는 것'으로 치부됐을 것이다. 모두들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거 할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하고 지적했을 테니 말이다.